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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라는 별

븍흑그세

@cdhoodcdcd

​고추잠자리 - 너라는 별

지이잉

 

“안녕하세요. 북산고 밴드 ‘슬램덩크’입니다. 축제는 다들 재밌게 즐기셨나요? 그렇다면 이 분위기가 계속 이어지게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첫 곡은 고추잠자리의 너라는 별입니다.”

 

서호열은 많이 의뭉스럽다. 어쩌다가 강백호와 엮였는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래가 꼭 내 마음 같아서 혼란스럽기만 하다. 어쩌면 강백호도 그러지 않을까. 체육관 가장 뒤편에 서서 보는 저 아이들의 밴드는 그 시절에만 느낄 수 있는 청춘의 향연이 가득했다. 서호열은 안 그런 척했지만, 그런 청춘을 항상 부러워했던 것 같다. 그에게 청춘이란 잠잠한 수면과도 같았기에, 어른들이 말하는 ‘청춘’을 들을 때마다 어떤 감정도 들지 않았다. 공감도 모르겠고, 그냥 그랬다. 근데 지금은? 모르겠다. 내 옆에 서 있는 강백호라는 놈 때문에 아무것도 모르겠다. 강백호는 자신과 같은 부류는 아니었기에, 그의 청춘은 항상 반짝반짝 빛이 났다. 그래서 그런가 강백호는 자연스레 내 손가락과 자신의 손가락을 얽는다. 나라면 상상도 못할 짓을 표정 하나 안 바꾸고 해버리다니.. 그래.. 네 덕에 새로운 경험한다 치고 그냥 받아들일게. 네가 하는 모든 행동들을 내가 어떻게 막을 수 있겠어? 나도 아직은 17살 질풍노도의 시기니까 이 정도는 한 번 휩쓸려줄게.

 

그리고 받아들이다 보면 내가 어디로든 도망쳐도 너에게로 돌아오겠지.

너라는 별

삐비비비비비빅!!!!

 

강백호는 소란스럽게 울리는 알람을 끄고 부스스 일어난다. 새벽 6시 30분이라는 숫자가 크게 띈 휴대폰을 멍하니 보다가 급히 일어난다. 아무래도 첫날인 만큼 7시 30분 전에는 도착해야겠지. 백수 생활도 이제 끝이구나..

 

“자 여러분 인사하세요. 이번에 새로 들어온 강백호 선생님입니다. 역시 농구 선수였어서 그런가 아주 듬직해!!”

“아하하.. 안녕하세요. 체육 과목을 담당하게 된 강백호라고 합니다. 첫 학교가 제가 다니던 학교라서 많이 기쁜데요. 잘 부탁드립니다!!!”

“헐!! 혹시 15년 전에 우승 신화를 이끌었던 그 강백호예요?? 그럼 서태웅 선수도 아시겠네!? 저 서태웅 선수 완전 팬이거든요!!”

 

저런.. 나를 알긴 해도 손톱 때만큼만 알고 모든 관심은 서태웅이었나 보군. 내가 훨씬 잘생기고 멋진데 왜 다들 서태웅한테만 안달 내는 건지 이해를 할 수 없다. 20대 초반이었으면 박박 우기며 ‘내가 더 멋진데 왜 걔 팬을 해요!!’ 라 했겠지만, 여기는 내 직장이 될 곳. 서른둘 먹은 강백호는 이제 사회생활이란 것을 할 줄 안다.

 

“아 그 녀석이랑은 아직도 만납니다. 만날 때마다 쪼아대서 별로 안 좋아하지만, 사인 필요하시면 제가 한 번 구해보죠!!”

“아 진짜 백호 선생님~!! 첫날인데 벌써 점수 따는 거야? 난 그럼 정대만 선수로.”

“만만군은 좀 힘든데.. 요즘 감독 일이 잘 풀려서 그런가 자기 잘난 맛에 살고 있거든요. 밥맛이라 연락 잘 안 하는데, 김 선생님이 부탁하시니 또 제가 함 부탁할게요!”

 

첫날 이미지는 완전 대성공! 이 작전은 가히 천재적이라 할 수 있겠다. 영어, 수학, 미술, 기가, 생윤, 생명.. 등 여러 선생님들이 옹기종기 모여 내게 관심을 가져 주셨지만, 오직 한 명. 국어인 양호열 선생님만 살짝 웃으며 인사하시곤 수업 준비를 하셨다. 깔끔하고 단아하게 생긴 모습을 보니 국어와 이미지가 잘 맞아떨어졌다. 대충 이야기를 나눈 뒤 서로의 자리로 흩어져 자신의 업무를 시작하였다. 내 자리는 국어 선생님 옆. 최대한 신경 쓰이지 않게 짐을 옮기며, 슬쩍 본 교과서에 적힌 문학. 문학이라.. 잘 어울리네.

 

띠리띠리 딩딩

띠리띠리 딩딩

땅따라 딴딴딴

 

“백호 선생님~ 담임도 신청하셨던데, 어서 반에 가봐요. 이거 본령 10분 전에 치는 종이거든.”

“아 감사합니다!”

“선생님 되는 첫해에 담임하는 거 많이 어려울 텐데, 아직 1학년 애들이라 그나마 괜찮을 거야. 그땐 대학이니 뭐니 너무 자세하게 안 물어봐도 괜찮거든.”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아 저는 1반이라 이만..”

“그래~ 백호 선생님~ 수고해~~”

 

고등학교 땐 항상 열리기만 기다렸던 문을 내가 직접 열고 들어간다. 그것도 학생들을 만나기 위해서..

 

“안녕, 얘들아! 새 학기라 많이 힘들지? 겨울 방학은 잘 쉬고 왔어? 고등학교라는 곳에서 첫 발을 내딛는 게 많이 어색하지? 적응 잘 못 하겠으면, 선생님한테 다 말해!!! 언제든 열린 상담소니까! 아 그러고 보니 내 이름을 소개 안 했네..ㅎㅎ 내 이름은 강! 백! 호! 체육이고, 잘 부탁한다!!”

 

갓 중학교를 졸업한 앳된 얼굴들이 새 친구들을 보느라 여념이 없다. 그래.. 내 소개가 귀에 들어오지 않겠지.. 그치만….. 나 어제 이거 4시간이나 연습했다구우.. 들어는 주라….

 

“선생님!! 선생님 진짜로 느바 갔다 오셨어요??”

“…. 딱 발만 담그고 온 거지 뭐.. 자!! 10분 뒤에 수업 시작이니까 어서 화장실 갔다 와~”

 

살짝 웅성거림이 있었지만, 새 학기 첫 고등학교 생활을 앞둔 녀석들에겐 내 과거가 딱히 관심거리는 아닌지 금세 친구를 만드느라 여념이 없었다. 벌써 몇 년이 지났는데도 내 마음은 알싸하구나.

 

-

“백호 선생님! 점심 같이 드실래요? 국어 쌤이랑 수학 쌤도 같이 갈 거라 4교시 끝나기 20분 전에 급식실에 같이 갈 거거든요~ 4교시 끝나고 급식실 가면 애들이 너무 북적거려서 힘들어요. 시간표 보니까 백호 선생님은 3교시만 하는 거 같던데?”

“네ㅎㅎ 맞아요. 그럼 20분 전에 교무실에서 후딱 나올게요..”

 

저 분은 영어였지? 어릴 땐 쌤들이 먼저 밥 먹는 거 보면 부러웠는데.. 이젠 뭐 부러울 것도 없네. 일 하러 왔다고 생각하니 딱히 부러운 점이 아니었다. 그냥 집에 가고 싶을 뿐.. 첫날인데도 쓸 보고서가 많은 걸 보니 내가 진짜 선생님이 됐구나 싶었다. 4교시 시작종이 울리고, 내 옆자리도 곧 채워졌다. 짧게 안녕하세요 라며 나눈 인사 뒤엔 아무 말도 오가지 않았다. 영어 쌤처럼 말이 많았으면 친해지기 쉬운데.. 용기 내어 쪽지 하나 보내어 봤다.

 

[경선 선생님(영어)께서 4교시 끝나기 20분 전에 나오라던데, 같이 급식실 가실래요?]

 

스을쩍 힐긋거리다 이내 쓱쓱 적어낸다.

 

[네]

 

요즘 국어 쌤들은 다 이런가.. 단아한 얼굴에 멋진 어른 글씨체. 필기에 환장하는 학생들에게 인기 좋겠다. 난 왜 이렇게 국어 쌤한테 신경을 많이 쓰는 거지. 내가 최근엔 공부만 해서 저런 얼굴에 면역력이 떨어지긴 했지. 쓱쓱 훑어가는 내 전 여친들 역시 단아하고 단정하고 이뻤다. 어 잠시만.. 여기서 나랑 양호열 쌤이 이어지면 사내 연애….? 아니지 이게 중요한 게 아니라 왜 내가 남자를 좋아한다는 생각을 해버린 거지? 나 금사빤가? 익숙한 얼굴인데.. 누군가가 떠올라서 이런 감정이… 계속 드는 거 같은…..

 

“백호 선생님, 보고서는 장난으로 쓰는 게 아니에요. 그 ㅏ 만 써진 것들은 어서 지우시죠? 교장 지나가면 개꼽주니까요.”

“억! 아 흡.. 넵.. 감사합니다..”

 

살살 올라간 입꼬리가 꽤나 보기 좋네. 이런 웃음을 전에도 봤는데.. 그러니까.. 고등학교 때, 이런 웃음을 보여줬던 남자애가 있었던 거 같은데 마치 모자이크가 된 거 마냥 흐릿하다. 이름도 호열이었던.. 한 남자애였지. 날 대게 좋아해줬는데, 연락처는 있었지만, 연락은 하지 않았다. 미국에 간 초반엔 전화비 때문에 부담스러워서, 그 이후는 그냥. 하지만 6개월을 주기로 그 아이가 항상 떠올랐다. 마치 지금처럼.. 보고서를 써야 하는데, 갑자기 그 애를 생각하는 딱 지금.. 지금 몇 시지. 헐!! 4교시 끝나기 20분 전이다!!! 빨리 밥 먹으러 가야 하는데..!! 옆자리를 휙 보니 벌써 교무실 문을 열고 있는 양호열 선생님이 있었다. 치사하게 시리… 나한테 안 알려주고, 지만 빠져나가네.

 

“호열 선생님은 저 놔두고 가시기예요? 저 열심히 일하느라 시간 못 본 거 아셨으면서..”

“일하느라 못 본 게 아니라 멍 때리느라 못 본 거 아니고요? 푸흐.. 강백호 선생님은 참 변한 게 없네요. 그때나 지금이나. 참 신기한 사람인 거 같아요. 어서 가죠? 오늘 개학이라고 맛있는 거 나왔던데.”

“헐 뭔데요?”

“돼지고기 김치찌개.”

“아~ 우리 학교 돼지고기 김치찌개 너무 그리웠는데..!! 맛있겠다~”

“우리 학교 돼지고기 김치찌개는 예나 지금이나 맛있더라고요. 맛이 변하지 않아서 좋다고 해야 하나?”

“… 예나 지금이나요?”

“저도 여기 졸업생이거든요. 50번째 졸업생. 나랑 동창일 텐데?”

진짜 걘가. 점점 미궁으로 빠져간다.

-

아~ 하루가 너무 고달팠어~! 그때 부상만 안 당했으면.. 아직도 농구 경기 때문에 몸 관리하고 있겠지. 존슨은 잘 지내려나.. 나 떠날 때 그렇게 울고불고했는데. 당연히 잘 지내겠지. 뉴스에도 빵빵 터지는 거 보면, 그 누구보다 농구를 사랑하면서 지내고 있겠지. 욱신거릴 때 포기할 걸.. 경기 한 번 더 하겠다고 왜 고집을 부려서 허리를 이 지경으로 만든 건지. 그 경기 하나가 뭐라고 허리를 못 쓸 정도로 상처입혔는지.. 후회했다. 후회된다. 앞으로도 후회될 것이다. 그렇지만 임용에 합격한 순간부터는 정말 새 인생이다. 잊어버리면 되는 거야. 달콤한 사탕 한 번 먹었다고, 거기에만 얽매여 있으면 안 되는 거니까.

 

푹신한 침대에 누워 양호열을 생각하다 급히 일어난다.

 

“졸업사진이 어딨더라?”

 

케케묵은 먼지 속에 찾아낸 졸업사진. 미국행이 결정되고 바로 처박아뒀었지.

 

“어~디보자.. 양.. 양.. 양호.. 열.. 3반.. 24번.. 서호열.. 3반에 2번 강백호. 양호열은 없고 왜 서호열만 있는 거야.. 그러고 보니 코랑 입이 닮은 거 같은데.. 진짜 양호열이 서호열이라도 된다는 건가?”

 

오랜만에 본 서호열의 얼굴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미국에 있었던 10년 동안 6개월 주기로 내 머릿속을 뒤집어 놨던 그 소년. 찾고 싶어도 못 찾았던 소년.. 이상하게 웃음이 났다. 양호열은 못 찾았는데 내가 찾던 서호열은 진짜 찾은 것 같아서.

-

벌써 한 달 반이 지나 중간고사를 치렀다. 나와 양호열 사이엔 큰 변화는 없었다. 그냥 딱 직장동료. 직장에서 나오면 마주치긴 싫은 딱 그 수준을 넘어서지 못했다.

 

“자~ 오늘 드디어 시험이 끝났네~ 첫 시험이라 많이 어려워서 중학교 때보다 성적이 낮게 나온 친구들도 많을 거야. 근데 이게 끝이 아니란 걸 기억해 두고, 오늘의 실수는 오늘 덮어두면 되는 거야. 뭐가 틀렸든 그 이유를 알아내면, 이후의 풀이는 간단하거든. 자 말이 너무 길었지? 휴대폰은 차례 지켜서 가져가고, 주말 푹 쉬어!”

“네에..~”

 

많이 힘들긴 했나 보다. 다들 꼬라지가 말이 아니네.. 고등학교 때 이렇게 공부했던 건 기억 안 나지만, 임용 준비한다고 보낸 2년의 세월이 훅훅 지나갔다. 대학교 때도 그렇게 열심히 공부 안 했었는데, 막상 취업이 다가오니 그게 아니었지.

 

“백호 쌤. 같이 교무실에 가실래요?”

“어. 호열 쌤.. 그, 그를까요?”

“허얼..!! 국어 쌔애앰..ㅠㅠ 저 서술형 2개 잘못 쓴 거 같아요.. 아 진짜 국어 쌤한테 물어본 거였는데..!! 완~전 아까웠던 거 있죠? 그래도 객관식 18문제는 다 맞는 거 같아요.”

“이야~ 설아가 국어 우등생일 줄은 몰랐네? 매일 쌤한테 장난쳐서 꼴등 하나 했는데 말야. 그래도 쌤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아서 다 맞을 걱정은 안 해도 돼~ 15번 문제 맞혔으면 국어 우등생 인정~”

“저도 호락호락하지 않거든요? 그럼 안녕히 계세요~!!”

“그래~”

 

타닥타닥 빠르고 즐거운 발걸음으로 학교를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새삼 양호열이 선생님이란 걸 느꼈다.

 

“호열 쌤은 호락호락하게 문제를 내진 않나 봐요?”

“그럼 등급을 어떻게 매겨요. 요즘 애들 너무 똑똑해져서 문제 내기 힘들어요. 중간 문제가 쉬워서 등급이 안 나뉘면 그것도 문제고, 문제가 어려워서 등급이 안 나뉘면 이것 또한 문제라 요즘 좀 빡세네요.”

“호열 쌤은 선생님이 되신지 몇 년 되셨어요?”

“전.. 벌써 4년째 어찌저찌하고 있네요.”

“우리 학교가 처음이었어요?”

“아뇨. 저번 연도에 와서 지금까지 하고 있어요. 여기에 오게 될 줄은 정말 몰랐거든요? 그래도 모교가 좋긴 하더라고요. 익숙해서 그런가.. 여튼 우리는 어서 교무실로 가죠?”

“네..”

 

체육인 난 여전히 보고서 작성을 하지만,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시험 서술형으로 인해 쉴 틈 없이 종이를 넘기며 채점하고 있었다. 호열 쌤은 안경을 낀 상태로 아이들의 구부렁한 글씨들을 해석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저 얼굴을 보니 안 풀리는 글자가 있는 모양이다.

 

“호열 쌤! 제가 또 나쁜 글씨 중에 한 글씨 하거등요? 보여줘 봐요. 고수는 고수가 알아보는 법입니다.”

“프학… ㅋㅋ.. 부탁드리죠. 여어기 문장 전체가 잘 모르겠어요. 마지막 문제라 그런가 급하게 적었나 봐요. 원래도 해석하기 힘든 글씬데 더 알아보기가 힘드네요.”

“선생님 마지막 이 단어 뜻은 모르겠어요. 항상 사랑하고 또 사랑합니다.”

“……. 네?”

“네?”

“아니.. 그. 그런 말을.. 여기서 하는 건.. 아니.. 어. 네?”

“네? 아니 학생이 이렇게 적어놨다고요..! 아, 아니.. 그 학생이..”

“… 아! 아 이런 쓸데없는 걸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니.. 하하하.. 가, 감사합니다. 백호 쌤~”

 

호열 쌤은 급히 종이를 가져가며, 책상이 블랙홀인 것처럼 상체가 대부분 사라졌다. 귀가 빨겠던 양호열. 사랑한다는 말에 놀랐던 양호열. 싫다는 말은 안 했던 양호열. 듣기는 좋은 듯해 보였던 양호열. 양호열. 양호열. 내가 기억하는 서호열의 모습이 양호열에게 있는 기분이다. 왜 자꾸 이런 허한 마음이 드는지 모르겠다. 복잡한 맘 꾹 누르며, 다시 타자를 치기 시작했다.

 

-

 

하……..

 

“자~ 시험 끝난 기념으로~ 모두 건배합시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으고하셨슴다..~”

“하셧다~”

“아니 다들! 왜 이렇게 힘이 없어~ 자 다들 어서 고기 드시게나!”

 

힘이 없죠. 불금에 가뜩이나 서술형 시험이 있었던 터라 매길게 잔뜩인 선생님들이니까.

 

“호열 쌤.. 적당히 마셔요.. 벌써 달리면 2차 때 어떡하시려고..”

“컼.. 어떠케든 되겠져.. 회식을 당일 통보하신.. 망할… 읍!”

“미쳤어요? 양호열 씨.. 여기 아직 직장이야!! 정신줄 잡아..!”

“어머! 백호 쌤은 호열 쌤이랑 유독 친해졌네? 부러워~ 호열 쌤 진짜 틈 안 주시는 걸로 유명한데. 옆자리라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네?”

 

입을 한 번 열면 말이 줄줄 나오는 영어 쌤이 갑자기 착석하시면서 양호열은 그제야 정신줄을 잡는 듯했다. 그래… 거기까진 좋았는데.. 도대체 영어 쌤은 언제 말을 그만하시고, 이 망할 회식은 언제 파할 생각인 거고, 양호열은 도대체가 왜 미친 사람처럼 술을 퍼마시는지 모든 게 파국이었다.

 

“어어~ 체에육.. 강복해 선생니임은~ 거 2차 안 가나? 불금인데에?”

“아~! 양호열 선생님께서 너무 취하셔서 제가 데려다줘야 할 것 같습니다.”

“아아~ 어서 가게~”

“엥.. 택시 부르시지?”

“.. 조용히 해요. 미술 쌤.”

“ㅋㅋ.. 잘가요..”

 

절뚝절뚝 걸어가는 양호열이지만, 딱히 부축은 필요 없어 보였다. 뭐가 그리 힘들어서 회식 자리에 저리 술을 퍼마셨나..

 

“호열 쌤! 집이 어디세요!?”

“니이랑 똑같은 곳.. 푸삐지오 아파트으… 106도옹.. 1803호…”

“호열 쌤도 푸삐지오 사시는구나. 그런데요. 저 얼마나 봤다고 니니 하죠.”

“.. 가앙백호 니 진짜 기억 안 나는 거냐? 이러면 진짜 속상해..”

“제가 진짜 기억하고 싶은데 모르는 건 어쩔 수 있나요. 아니면 호열 쌤이 또박또박 설명해 주시던가요.”

“그니까…”

 

-

 

딱 눈을 반 덮을 정도의 앞머리에 공부만 하느라 푹 숙인 허리. 남들이 패션이니 유행이니 떠들 때, 양호열은 공부만 했다. 시험 성적에 목숨을 걸었던 건 아니고, 할 게 없었다. 관심사도 목표도 없던 양호열은 학생이라는 신분이기에 더 공부했던 것 같다. 사실은 저렇게 웃고 떠들만한 것이 있다는 게 부러웠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는 딱 모르는 문제를 물어보러 왔을 때였다. 양호열은 인생이 재미없었다. 아직 고1인데, 남은 2년은 얼마나 더 재미없을지 예상이 갔다.

 

“나도 그냥 학원 다닐까.. 그럼 시간이 빨리 지나가려나. 학교 마치면 공부 말곤 할 게 없네..”

 

액. 애앩.옹. 아앙앍.

 

우연이었다. 딱 농구부가 열심히 연습 경기를 하고 있을 때, 체육관을 지나갔고, 체육관 문 앞에 있던 고양이가 나를 향해 울었고, 난 발걸음을 멈췄고.

 

빡빡 민 빨간 머리 소년의 슬램덩크를 보았다.

 

“으하하!! 나도 이제 슬램덩크 할 수 있다고!!! 으하하하!!!!”

 

세상이 떠나가라 웃었던 소년의 머리에 혹이 4개 자라났다.

 

“강백호, 아직 경기 중이다! 집중하도록!”

 

분위기는 나쁘지 않아 보였다. 우리 학교가 농구부로 유명하단 말은 못 들었었는데.. 한 번 보니 집에 갈 타이밍을 잃어버렸다. 눈은 농구 코트 속 빨간 소년에게 손은 골골거리며 자신을 바라보는 고양이에게 갔다. 30분이 지났을까 경기는 끝이 났고, 그들은 감독의 피드백을 꼼꼼히 들었다.

 

“재밌지? 혹시 너도 농구 좋아해?”

“.. 아니, 처음봤어. 농구 룰도 모르는데 그냥 할 거 없어서 본 거지..”

“밖은 좀 더울 텐데, 안에 들어와서 볼래? 안에서 보면 더 재밌거든. 발 스텝이나 자세, 공의 궤적이 더 확실하게 보이고, 코트 속 지나가는 말들이 더 확실하게 들려. 그게 경기를 더 실감 나게 만들고, 내가 뛰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생생해. 어때? 들어와 볼래?”

 

고민은 했다. 사실 집에 돌아가봤자 할 것도 없을 텐데, 여기서 시간 좀 때우다가 갈까 싶기도 했다. 그때 빨간 머리의 소년과 눈이 마주쳤다. 어느 의도가 담긴 눈빛이었기에 기분이 이상해져서 급히 구부린 무릎을 펴 일어났다.

 

“미안. 엄마가 일찍 오라고 해서 지금 가봐야겠어. 추천해 줘서 고마워. 시간 나면, 다시 보러 올게. 고마워, 소연아.”

“이름을 어떻게.. 아 이름표! 너는~ 서호열이네? 호열아, 다음에 보자!”

“안녕.”

 

황급히 학교 밖을 나왔다. 뭔진 모르겠지만, 무언가가 달라진 기분이었다. 짧았던 40분이 양호열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칠 것 같다고 생각했다.

-

“야 니가 서호열이냐!?”

“.. 근데?”

“너.. 감히 어제 소연이의 제안을 거절했겠다!! 그게 얼마나 귀한 일인 줄 모르고 거절하다니!!”

“그게 너랑 상관있는 일이야? 1교시가 수학이라 지금 쉬는 시간에 자야 해. 시끄럽게 굴지 말고, 니 자리에 가. 짜증나니까..”

“이 자식이..!!”

 

관심없는 척 다시 책상에 엎드려 잠을 취했다. 사실 좀 무서웠다. 한평생 했던 운동이라면 숨쉬기밖에 없었던 서호열과 강백호의 체격은 압도적으로 차이가 났기에 어느 정도 당연한 일이었다. 쿵쿵거리는 발걸음 소리가 멀어지자,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아니 쟤가 뭔데 내가 이렇게 긴장을 해? 어이가 없어서. 채소연이랑 나랑 뭔 일이 있었다고 저러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소연이가 했던 제안? 아 설마 체육관에 들어와서 보라고 했던 걸 말하는 건가? 내가 그거 하나 거절했다고, 어제 그런 눈으로 날 본 거였어? 어쩐지 무섭더라..

 

“어이없어..”

 

점심 식사 후,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지 강백호는 나를 찾아왔다.

 

“넌 왜 여기 있냐? 급식은 안 먹어?”

“그냥 딱히 배 안 고파서 빵으로 대충 때우는 거지. 그리고 옥상이 제일 조용해. 미술실도 가보고 안 쓰는 교실도 가 봤는데 여기가 최고야. 먼지 없고, 선생님한테 들킬 걱정도 안 해도 되고. 그래서 왜 날 찾았어?”

“으흠..!! 그, 그니까.. 아침에 화내서 미안하다. 소연이가 먼저 말 걸어줬는데 감히 거절해서 내가 좀 분노를 조절하지 못했던 것 같다. 니 사정도 있었을 텐데, 그러면 안 됐어.”

 

잘 아네.

 

“사과받았으니 이제 나가. 혼자 있고 싶어.”

“넌 친구 없어? 왜 외롭게 이러고 지내냐? 반에선 친구가 많아 보였는데.. 그.. 뭐라더라.. 겉절이 친구? 그런 거냐?”

“겉으로 친구겠지.. 걔들은 내가 궁금한 게 아니라 자기들 질문에 대한 답이 궁금한 거야. 착하고, 공부 좀 한다고 하니까 선생님한테 물어보기 껄끄러운 건 나한테 묻는 거지. 딱히 손해 보는 것도 없고, 내가 생각 못 했던 부분을 물어봐 주니까 서로 좋아. 그리고 난 친구는 딱 질색이야. 걔 눈치 보면서 사는 건 좀 피곤해서, 그냥 혼자인 게 좋아.”

“엥. 그래도 심심하잖냐!! 이렇게 된 거 내가 친구 해줄게! 너도 심심했을 거 아냐. 체육 때, 짝지으라고 하거나~ 밥 먹을 때!! 쉬는 시간이나~ 시험 끝나고 뒤풀이도 못 하잖냐!! 아~ 난 절대 못 해!”

“풉..! 너도 친구 없으니까 그러는 거 아냐? 응~? 그런 게 아니면, 왜 점심시간을 나랑 허비해? 이때 친구랑 놀지 언제 놀아? 바~보. 제안을 할 거면, 너가 굽히고 들어와야지. 어디서 선심 쓰듯이 제안해?”

“썸씽? 썸씽은 그 뭐냐! 그으린 라이트 아니냐? 너 혹시 나 좋아하냐?! 야;; 그건 안돼.. 난 좋아하는… 여자가.. 있, 있단 말이다..!”

“아 존나 안 궁금하다고.. 강백호, 어서 나가. 아 진짜 말이 통해야 뭔 말을 하지. 지 듣고 싶은 대로 듣고 지랄이야..”

“너.. 너!! 나한테 욕했냐?!”

“그래, 욕했다! 왜! 왜! 아니 그러면 말을 잘 알아먹던가!!”

“말을 어떻게 먹어!! 배탈.. 나는 거 아니냐..”

“아!!!! 나가!!!!!”

“눗…”

 

그러고 강백호는 쭈뼛쭈뼛 옥상을 나갔다. 진짜 거짓말 안 치고, 개 같이 화났다. 아니 농구도 머리 쓰는 게임 아니었어? 예체능 애들도 공부 열심히 하던데.. 요즘 예체능도 공부 들어간다고, 한창 시끄러웠는데.. 아닌가?

-

할 짓이 없었다. 그래서 고양이도 만질 겸, 농구부를 보러 왔다. 농구부가 코트를 쓸 땐, 다른 부 애들은 체육관을 안 쓰는 모양이었다. 아니면 학교가 끝나고 체육관에 남을 필요도 없을 만큼 성적이 저조한 팀이라거나.. 뭐 나한테는 좋았다. 딱 하나만 집중할 수 있으니까. 그러고 보니 쟨 왜 농구를 좋아하는 거지.. 교실에 있을 때의 눈과 차원이 달랐다.

 

“만만군 패스!!”

“아 여기서 어떻게 패스해!”

“형 그것도 못해요? 그러고도 3점 슈터예요?”

“정대만! 어서 패스해!!”

“아~ 진짜!!”

 

덩치 큰 애들에게 둘러싸여 있던 그는 진짜로 강백호에게 패스를 날렸다. 농구 선수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농구 정말 잘하지? 안에서 봐도 되는데..”

“야옹이랑은 같이 못 보잖아. 매일 여기 있는 거 보면, 얘도 장차 농구선수가 될 건가 보던데.”

“푸핫..! 얘 이름은 백호야.”

“백호..? 그건 저어기 날뛰는 빨간 원숭이 이름이잖아.”

“아흡..ㅎㅎ 아 맞아~ 백호랑 너무 똑같이 생겨서 지어준 이름이야. 하는 짓도 엉뚱해서 닮았다고 해야 하나? 얘 그래도 성질 더럽기로 유명한 고양이거든. 네가 마음에 들었나 보다!”

“흠.. 쟤랑 확실히 닮았네. 관심도 안 줬는데, 이렇게 달라붙고…”

“호열이 네가 착해서 그런 거 아닐까?ㅎㅎ 아 시합 끝났다. 갈게~”

“잘 가.”

 

나도 슬슬 가볼까 하던 순간, 쿵쿵쿵 거리며 강백호가 입구로 뛰어왔다. 고양이 백호.. 그니까 고백호는 화들짝 놀라며 풀 속으로 숨었다. 인간 강백호는 내 앞으로 왔고…

 

“야! 천재의 경기를 볼라믄 어? 딱 체육관 들어와서 봐야지. 여기서 보면 내 멋있는 경기가 안 보일 거 아냐!!”

“너 보러온 줄 알아? 백호 때문에 온 거야.”

“백호면 나잖아. 새끼~ 아닌 척 하긴! 나 보러 온 거지?”

“아.. 진짜.. 짜증나…”

“칫. 뭐만 하면 짜증 난대. 그래서 나 잘했어? 이번에 신기술도 발명했걸랑~ 방금 썼었는데 어때? 멋지지? 멋지지?”

“어어.. 멋지다~”

“눗.. 성의없어.. 내일은 같이 밥 먹자!!”

“무슨!”

 

자기 할 말만 떡 해놓고, 다시 농구하러 돌아갔다. 아 완전 지 멋대로인데, 왜 이렇게 속수무책인지 모르겠다. 짜증만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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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호열, 밥 먹으러 가자! 오늘 급식 진짜 맛있는 거 나와!”

“피곤하니까 난 잘래.. 너 혼자 먹어.”

“밥 먹으면 괜찮아. 어서 일어나!”

“아.. 진!”

“어~서~ 이렇게 체력이 없는데 잠잔다고 체력이 생기겠냐? 공부도 농구도 밥은 먹어가면서 해야 한다고!!”

 

듣고 보니 맞는 말이라 수긍하고 급식실로 갔다. 강백호 말대로 오늘 급식은 진짜 맛있었다. 우걱우걱 먹던 강백호가 내 식판을 슬쩍 보더니

 

“야.. 요거트 안 먹냐..? 내가 요거트에 환장을 하거등.. 안 먹으면 나 주라.. 헤헤.”

“안 먹으니까 가져가.”

“진짜?! 서호여리~ 너 진짜 착한 아이구나!! 내가 네 영양분까지 꼼꼼하게 먹어둘게! 고맙다!”

 

이때 살짝 귀여웠던 것 같기도 했다.. 음.. 아..ㅋㅋㅋ 막이래..ㅋㅋ

 

밥 먹고 나서는 옥상으로 올라가 햇빛 테라피를 받았다. 강백호는 자연스럽게 내 허벅지를 베게 삼아 누웠다. 날 언제 봤다고, 발을 오억 킬로미터까지 뻗어댔다.

 

“넌 왜 그렇게 공부를 열심히 하냐? 뭐 의사 되려고 그러냐?”

“아니. 그냥 할 게 없잖아. 학생이면 공부가 다니까 하는 거지.. 그리고 부모님도 내가 성적 좋을 때만 웃지 다른 때에는 안 웃어. 그냥 틀만 가족이지. 그냥 틀만.. 그러는 너는 왜 농구해?”

“난 느바에 갈 거다. 미국에 가서 당당히 세계 1짱을 먹을 거야. 비록 여기선 깡패니 머리가 빨개서 무섭다니 그런 말 하지만, 거기서 내 실력으로 당당히 코트에 오를 때에는 분명 다를 거라고. 사람들이 말하겠지.. 천재가 하는 플레이에 실패는 없을 거라고. 그리고 내 인생에서 제일 재밌던 게 농구 말곤 없었어.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도망치는 것만이 정답이라 생각했었어. 그래서 빨간 머리니 덩치 있어서 싸워볼 맛 난다니 하며 덤비는 애들한테 꿀밤 정도 먹여놨더니, 거기서 짱 먹었어. 난 애들이 하도 멋지다 멋지다 하니까 진짜 멋있는 줄 알았거든? 근데 그냥 아무것도 아니었어. 남는 게 없잖냐. 커서도 싸우면서 살 것도 아닌데.. 우리 아빠가 그런 모습을 원하지도 않을 거고..”

“.. 너 정말 열심히 살았네. 그래도 어머니께서 경기 보러 오시겠다.”

“…. 어머니는 누군지 몰라. 태어날 때부터 몰랐어. 그래서 더 부끄러운 거야. 아부지는 나 키운다고 열심히 일했는데, 남은 가족인 아들은 아버지 돌아가시니까 깡패짓 하고.. 아버지가 친구는 잘 사귀랬는데, 나한테 다가오는 놈 하나 없는데 친구는 어떻게 만드냐. 그냥 모든 게 쪽팔렸는데, 소연이가 내 인생을 바꿔줬어. 농구 좋아하냐는 그 한마디. 딱 그 한마디가 날 바꿨거든.”

 

생각보다 규모가 커진 이야기에 좀 당황했지만, 그게 뭐가 중요할까. 이 아이가 여기까지 왔다는 게 그저 대견했다. 나와 똑같은 17살이 맞나 싶을 정도로 의젓했다. 단어 몇 개 좀 잘 안다고, 공부 좀 한다고, 부모님이 나한테 관심 좀 없다고 너랑은 다른 인생을 사는 것처럼 굴었던 게 부끄러워졌다. 그리고 그냥 싹싹 민 머리를 슬슬 쓰다듬어줬다. 제게 말하기 껄끄러울 이야기를 해줬기에, 계속 발전하는 네가 너무 멋졌기에, 여기까지 오는데 수고했기에 쓰다듬어주었다. 그냥 그땐 내 맘이 그랬다.

 

“… 나 좀 자도 되냐?”

“30분 뒤에 종 치니까.. 자던가. 깨워줄게.”

“손.. 멈추지 말아 주라..”

“…. 잘 자.”

 

눈부시게 비추던 햇빛도 살살 불던 바람도 기억을 조작하기엔 너무 완벽했다. 안 되는데.. 얘는 남자잖아. 이미 좋아하는 애도 있는 애잖아.. 좋아해서 뭘 할건데.. 이 아이가 주었던 관심은 그런 고민을 덮을 정도로 좋았다. 친구도 없고, 부모도 아이에게 관심이 없다. 그런 나에게 왔던 작은 관심이 너무나 좋았던 것 같다.

 

그때 나는 드디어 재밌는 걸 찾았다. 아마 내 인생에서 이 아이보다 재밌는 건 없을 거라 생각했다.

-

이날 이후로 강백호는 발을 오백억 킬로미터를 뻗어댔다. 아침에 오자마자 내 옆자리 애를 자기 자리로 보내 버리질 않나, 수업 시간엔 쪽지란 쪽지는 다 보냈다.

 

[수학 완전 재미없어.. 자고 싶은데 맨날 깨워서 자지도 못하고.. 천재의 수면권을 보장해 달란 말이다! \ (`皿´) /]

 

“푸핫!”

“…………..”

“호열이가 뭐 재밌는 걸 찾았나~? 이 부분 시험에 나올 수 있는 부분이라 집중해야 한다~ 자 이어서 할게~”

 

[너 때문이잖아.. 수학이 꼽줬어… (つд⊂)]

 

강백호는 흠칫 놀라며.. 또 쓱쓱 써댔다.

 

[미안하다.. 적당히 웃긴 거 쓸게.. 이걸로 웃을 줄 누가 알았겠냐!! (゜ロ゜;ノ)ノ 그래도 갑자기 싸해진 거 웃겼어ㅋㅋㅋㅋㅋㅋㅋㅋ]

[짜증나지만, 네가 좋았음 됐다ㅋㅋㅋ]

 

강백호는 또 흠칫 놀랐다. 뭐가 문제 있나? 살짝 귀가 빨개진 것 같기도 하고…

 

[낫간지러워.]

[바보야.. ‘낯간지럽다’ 거든?ㅋㅋㅋㅋㅋ]

 

아 얼굴이 시뻘게졌다. 쟤도 이런 걸로 부끄러워 하구나.. 좀 웃겼다.

 

[오늘은 나랑 같이 집에 갈 수 있냐?]

 

흠.. 오늘? 오늘도 할 게 없어서 농구부 경기를 보다가 집 가려고 했는데..

 

[언제 마치는데?]

[7시]

[엄마한테 전화해서 공부하다가 7시에 집 간다고 하지 뭐..]

[히히 나이스~ 약속했다!!]

[ㅋㅋㅋㅋ ㅇㅇ]

 

공부에 방해가 되긴 했지만, 뭐든 좋았다.

-

 

“오늘 내 슛 어땠어? 진짜 연습 많이 했더니 좀 들어갔잖냐!”

“거기에 내 지분 500% 있는 거 알지? 너 잘 되면, 나한테 한턱내.”

“눗. 내가 원래 잘하는 거 거덩? 흥.. 나랑 어른 되어서도 같이 친구 해줄 거냐?”

“.. 당연하지. 난 한 번 맘 줬으면, 끝까지 가.”

“.. 좋아해.”

“뭐라고?”

“아. 아니~ 그런 마인드가 난 좋다고~ 어!.. 어서 집에 가자. 너희 어무니께서 걱정하시겠다!!”

“응.. 가자.”

 

중요한 것을 못 들은 기분이 들긴 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아니었기에 그냥 넘어갔다. 하지만 지금이라면 그러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한 번 더 물어볼 걸. 그랬으면 우리 사이가 이렇게 멀어지진 않았을 텐데.. 아직도 아쉬운 부분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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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산고가 그 콧대 높던 산왕공고를 이겼다.

 

그리고 북산고는 새역사를 썼다.

 

그리고 강백호는 다쳤다.

 

감독님도 말렸었다. 나도 소리를 질렀다. 하지 말라고, 너의 농구 인생이 거기서 끝인 줄 아냐며 소리 질렀다.

 

“영감님의 영광의 시대는 언제였죠…? 국가대표였을 때였나요? 난.. 지금입니다!!”

 

어느 누구도 그의 브레이크가 될 수 없었다. 아무리 서호열이라도. 어쩔 수 없었다. 좋아하는 사람의 영광의 시대를 깨뜨리고 싶지 않았기에 순응했을 뿐. 맘이 아픈 건 똑같았다.

 

그리고 시합이 끝나자마자 밑으로 내려갔다. 눈물을 줄줄 흘리며, 강백호에게 다가갔다. 그래 놓고 걱정하지 말라며 구급차를 타고 떠났다. 멀리 떠났다. 한동안은 내 옆자리도, 내 밥 친구도, 내 하굣길 친구도 없었다. 가끔은 강백호가 있는 병원에 가서 시간을 때웠다. 강백호는 불편하게 왜 여기서 공부하냐며 집에 가라고 했지만, 난 좋다고 했다. 그리고 같이 병원 앞 바다로 갔었다.

 

“호열아. 나 돈이 없다. 그래서 그냥.. 재활은 내가 알아서 할까 봐. 돈이 어디 굴러서 오는 것도 아니잖냐.. 하.. 그래도 난 후회하지 않아! 내 영광의 시대 중 딱 한 페이지 완성했거든. 그래서.. 난 후회는 안 한다..”

 

무수히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떼를 썼다. 딱 한 번만 투자한답시고, 치료비를 부담해달라고. 아니면 자신이 어른이 되었을 때에 꼭 갚겠다고 때를 썼다. 거진 일주일을 밥도 안 먹고 떼를 썼다. 항상 말 잘 듣고, 그냥 공부만 했던 아이에서 강백호가 된 기분이었다. 넌 알까 몰라. 내가 이런 짓까지 하고 있다는 걸 말야.

 

아버지는 그런 나에게 알겠다며 돈을 내주겠다고 하셨다. 기분이 이상했다. 눈물이 막 나고, 소중한 걸 겨우 지켜낸 기분이었다. 솔직히 짜증 나긴 했다. 대기업 사장인 아버지 밑에서 일하면서 그렇게 쪼잔하게 군 게 너무 화났다. 하지만 알고 있다. 돈은 어디 굴러들어 오는 게 아니니까.

 

“백호야. 난 너의 영광의 시대를 깨버리기 싫다. 치료 계속 받아. 너의 농구 인생 여기서 끝 아니야.”

“미쳤어? 이 큰돈을 내가 어떻게 받아? 넌..! 내가 도대체 너한테 뭐길래!!”

“소중하니까.. 난 네가… 소중하단 말야… 난 사는 데에 아무 지장 없으니까.. 받아주라.. 제발…. 친구로서 부탁할게.. 제발 받아서 너 치료비로 써주라.. 응? 흐윽..”

 

그냥 내 길잡이의 불이 꺼진 기분이었다. 줄줄 흐르는 눈물을 멈추기 위해 고개를 들었다. 아.. 북두칠성.. 그래.. 난 네가 북두칠성처럼 반짝반짝 빛났으면 좋겠어. 어디서 보더라도 항상 떠 있고, 길을 알려주는 북두칠성이 됐으면 했어. 내가 찾은 첫 번째 보물이란 말야.. 너가 나타난 이후에서야 인생이 재밌어졌단 말이야….

 

“하흑… 으윽.. 바보.. 서호열…. 내가 어른이 되면 다 갚을 거니까!! 더 멋진 사람이 되어서!! 다 갚을 거니까.. 이것보다 10배, 100배는 더 넘게 벌어서 줄 테니까…!”

“푸흐… 치료나 잘 받고 얘기해.. 바보야…”

“바보.. 윽.. 흐윽.. 바보 아니고 천재야…!”

“푸핫!! 알겠어.. 천재.”

 

그리고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그냥 조용히 손을 잡고, 바닷길을 따라서 걸었다. 절뚝이는 강백호의 걸음걸이를 따라서 나도 맞춰 걸었다. 내 나침반의 속도는 느리지만, 그래도 천천히 따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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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론 강백호와 이야기 나눌 접점이 없었다. 2학년이 되었을 땐, 반도 다르고 학원도 3개나 생겼었다. 만날 틈이 없었다. 그렇다고 강백호는 할 일이 없었냐면, 아니다. 그제서야 대학 준비를 해야 한다며, 내신을 챙기기 시작했다. 서로가 너무 바빴고, 고3이 되었을 때 들었다. 강백호가 미국에 있는 대학에 간다고. 선생님들 모두가 이 이야기를 떠들어 댔다. 난 이렇게 억장이 무너지는데.. 이젠 더 이상 가까이서 볼 수 없게 됐는데.. 모두 대단하다며 떠들고 있다. 짜증이 났다. 말을 나눠도 두세 마디. 옥상에 갔을 땐, 강백호는 없었다. 항상 없었다. 농구를 밥 먹듯이 하나 짜증 났다. 우리 우정이… 이렇게나 얇았구나.

 

그리고 졸업식. 모두가 시끌벅적 웃어댔고, 사진을 찍느라 소란스럽기 바빴다. 내 가족은 없었고, 강백호도 없었다. 그래서 그날 우리는 자연스레 서로의 가족이 되어 주었다. 사진도, 작별 인사도, 눈물도 나누지 않았다. 근 2년을 얼굴 한 번 제대로 보지 못했는데, 그냥 서로가 예상이라도 한 듯 옆에 서 있었다. 그리고 강백호는 내 손을 잡고 옥상으로 데려갔다.

 

“서호열, 잘 지내.”

“어떻게 연락 한 번 안 줘? 반 하나 달라져서, 할 일이 그렇게 많아서 연락할 시간이 없었냐?”

“호열아, 나 너 좋아해.”

“..”

“너가 좋아서 가까이 가질 못했어. 너한테 가려고 하면, 나도 모르는 친구들로 둘러싸여 있었잖아. 활짝 웃고 있었잖아… 나랑 있을 때보다 더 활짝 웃고 있어서.. 그냥 멀리서 바라본 거야. 널 떠난 적은 없었어. 앞으로도 그럴 거고.”

“난…”

“대답하지 마. 그냥 그런 걸로 알고 있어. 어차피 미국 가면 더 연락하기 어려울 거 아는데.. 고마웠어. 네 덕이야.”

“.. 응. 나도 네 덕에 여기까지 왔어.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지내자. 그리고 언제인지도 모르게 서로 만나자. 그리고 다시 이야기해.”

“푸흐.. 꼬부랑 할아버지 때 만나면 어떡하려고?”

“그럼, 그때 만나는 거지.”

“그렇구나… 그런 거구나..”

 

나만 미련이 남았나

 

“그런 거야.”

나만 이 관계에 진심이었나

 

“…. 잘 지내.”

 

나만 이렇게 슬픈 건가

 

“너도. 멋진 선생님이 되길 바랄게.”

 

이게 우리의 마지막 인사였다. 남들은 어떻게 이렇게 끝낼 수 있냐고 말하겠지만, 강백호도 나도 도망치는 게 최선이었다. 그냥 그럴 나이였다.

 

그래서 지금 묻는 거야.

 

강백호, 지금은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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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이 닮았어. 젖살도 빠지고.. 머리를 올리니까 딴 사람같네.. 어쩌다 양호열이 된 거야?”

“엄마가 재혼했어. 근데 아무리 봐도 서호열보단 양호열이 낫지 않아?”

“푸핫.. 그렇네. 그래서 내가.. 그랬던 거구나. 응.. 맨날을 생각했어. 널 학교에서 보기 전에도 항상 생각했고, 학교에 와서는 매일 생각했어. 보고 싶던 사람을 코 앞에 두고 그냥 그리워한 수준이네. 사실 무서웠어. 너에게 더 다가가면, 널 잃을 것 같았어. 옥상에서 나눴던 이야기도, 가로등 불빛 아래서 나눴던 이야기도, 남몰래 주고받은 쪽지들의 내용도, 바다에서 나눴던 이야기도, 졸업식 때 나눴던 이야기도, 네가 항상 해줬던 상냥한 말에도, 거기에 바보같이 웃었던 나도 다 사라질 것 같았어. 멍청한 짓인 건 알고 있어. 퇴원하고 나서 바로 너에게 달려갈 걸. 아이들에게 둘러싸인 널 찾아서 내 곁에 둘 걸. 항상 옥상에서 날 기다린다는 걸 알았으면 훈련도 째고 올라갈 걸. 미국에 가서도 온갖 핑계 안 대고 그냥 전화할 걸. 그럴걸.. 근데 다 끝일 것 같았어. 친구 한번 없었던 내가 그래도 괜찮을지 모르겠어서 그냥 그게 맞는 줄 알았어. 재활로 거진 6개월은 얼굴 못 보고 살았는데, 어느 누가 날 기쁘게 반겨줄까 싶었어. 한 발 더 갈 수 있으면, 뭘 더 바랄 게 없었는데.. 근데 그게 안 돼서.. 바라는 게 너무 많아졌어. 난 말야.. 22살에 얼리 드래프트로 빨리 선수 생활을 시작했는데, 본격적으로 뛰기 시작했던 26살에 등 부상이 재발했었어. 이젠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대. 걸어 다니는 것도 기적이랬거든. 아 얼마나 암담했는지 몰라.. 그때마다 네가 나한테 건네준 그 돈이 아른거리더라. 너도 나만큼 간절했는데, 이렇게 망쳐버리는구나.. 할 말이 없었지. 죽도록 힘들고 내 손가락은 네 전화번호로 향하는데, 거기서 길을 잃었어. 갈 길이 없었어. 내 도착지가 서호열이었음 했는데.. 어디로 갈지 모르겠어서… 너라는 별에 갇힌 것 마냥 살았어. 도착지는 명확한데, 매일같이 헤매고 있었거든. 감독이 그 꼴을 보더니, 불같이 화를 냈어. 그리고 당장 한국으로 돌아가서 선생님을 하든 감독을 하든, 공장 일을 하든 뭐든 하랬어. 언제까지 청춘을 낭비할거냐고. 근데 선생님이란 말을 들으니까 딱 너 생각이 나는 거야. 그래서 길을 정했어. 선생님이 되는 걸로 말야. 그러면 널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 바로 한국으로 돌아와 체육교육과에서 4년을 썩혔지. 2년은 임용고시에 썩혔고, 드디어 널 만난 거야. 근데 바보같이 앞에 두고 몰랐던 거야.”

“…”

“하아… 호열아. 너무.. 너무 보고 싶었어. 네가… 너무 그리웠어.”

 

비틀거리던 날 잡아줬던 그 몸은 자연히 내 품으로 들어왔다. 꾸깃꾸깃 넣은 몸은 한껏 쪼그라들어 있었다. 이런 어린애를 내가 길잡이로 삼았다니.. 웃겼다. 등을 토닥여 주었다.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던 그때처럼 스륵스륵 손은 등을 따라 흘러갔다.

 

“난 네가 너무 어려웠어. 아닌 척했는데 어려워 죽는 줄 알았어. 너랑 친했을 땐, 너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보이는데.. 너가 퇴원하고 돌아왔던 날, 널 보니까 설레 죽겠는데 넌 안 그러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에 그냥 도망쳤어. 그 6개월 동안 재활에만 신경 쓰고, 나한텐 신경 안 써줬던 너에게 진심이 아닌 말만 해버리면 어떡하나. 가끔 만났을 때에 내일 보자고 하면 넌 앞만 보고 가는데, 난 뒤만 바라봐. 이런 내가 너무 초라해 보이는데… 할 수 있는 건 그냥 보는 거였어. 내가 한마디 잘못해서 이 어색한 관계가 더 어색해지면 어떡하나 싶은 거지. 더 웃긴 건 우리가 그렇게 친하게 지냈던 3개월이 6개월을 이기지 못했다는 게 난 너무 슬펐어. 고작 그 6개월도 못 버티는 3개월을 가지고.. 너한테 다가가면…. 아무것도 못 얻고, 멀어지기만 할까 봐… 아무 말이나 해주지… 그냥 보고 싶었단 말이라도 해주지… 나만 바보같이 너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채.. 내 북두칠성을 잃어버린 채 살아왔잖아… 바보같이…. 나만 빙빙 돌아가.. 넌 나에게 오고 있었는데, 난 나 혼자 북두칠성 없이 헤매이며 살아가.. 너와 같이 보냈던 그 3개월 말고는 인생이 재미가 없어서 죽겠는데, 너만 없어. 너만 있으면 다 해결되는 게… 너만 없어서… 근데도 난 너가 잘 지낼 거라고 생각했어. 부상 소식은 들었지만, 너라면 잘 할 거라고 생각했어. 그냥..! 그냥 전화할 걸… 손가락만 흘려보내지 말 걸. 눌러볼 걸. 실수로 전화한 척이라도 할 걸… 너가 그렇게 힘들었으면, 미친 척하고 미국에라도 가볼 걸…. 흐어엉…”

 

다 큰 32살 성인 둘이서 엉엉 울어댔다. 그건 아마 속절없이 흘려보낸 14년 일지도 모른다. 그날 서로는 서로의 별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다시 반짝이기 시작한다.

 

“지금 와서 다시 고백하는 게 너무 바보 같지만, 널 좋아해. 호열아, 나와 함께 해줄래?”

“응.. 나도 좋아해. 강백호.”

“사랑해, 호열아.”

-

너라는 별

외전

따뜻한 오후 햇살과 푸짐하게 먹은 점심밥이 아이들을 졸게 만든다. 그래.. 이럴 때 고전시가 읽으면, 잠이 참 잘 오긴 하지. 뭔 말인지는 모르겠고, 어려운 단어만 그득하고, 숨은 뜻을 이해하는 게 힘들테지..

“얘들아! 어서 잠 깨자. 기지개 펴고~ 어서~! 이 고전시가에서 문제 3개는 나올 거니까 집중해야해! 너희들 6교시 뭐야. 체육이네! 자 체육하러 가기 전에 열심히 두뇌 운동하고 가자.”

 

몇몇 개구쟁이들이 눈을 마주친다. 불길했다…

 

“국어 쌔앰!! 쌤 진짜로 체육 쌤이랑 사귀어요? 아니, 제 친구가 학원 마치고 집 가는데~ 쌤이랑 체육 쌤이랑 손잡고 가는 거 봤대요!!”

 

아 씨.. 그날 좀 불안하다 했는데!! 기어코 강백호가 손잡아서..!! 일을 만드는구나….

 

“백호 쌤이랑은 아무것도 없어. 쌤이랑 백호 쌤은 그냥 직장 동료이자 친구지. 너희들 그런 말 백호 쌤한테 절대 하지 마. 그런 거 실례될 수 있는 말인 거 알잖아. 크흠!! 자 수업 다시 시작하자.”

“아~ 쌔앰..~”

‘야 그것봐.. 국어한테 물어보면, 답 절~대 안 해준다고 했잖아. 차라리 체육한테 물어보는 게 빠르지. 그 쌤은 얼굴에서 표정이 다 드러나잖아ㅋㅋㅋㅋ’

‘야 아니면 우리 이렇게 할래?’

-

“쌤! 쌤! 쌤! 백호 쌤!!!”

“안돼~”

“아 질문도 안 듣고, 뭘 안 된다고 해요!!”

“너희 또 배드민턴하고 싶다고 할 거 아냐. 오늘은 할 거 있으니까 안 된다~”

“아니요~ 그게 아니라~ 혹시 쌤은 국어 쌤이랑 어떤 사이에요?”

“.. 눗! 구, 구, 국어? 호열 쌤~?! 아하하하 그냥 그냥~!”

“…”

“그건 왜..”

 

눈치본다.. 이건 분명히 뭐가 있다..

 

“아니요~ 국어 쌤은 백호 쌤이랑 저얼~대 아무 사이도 아니고, 친구 사이도 아니라던데요? 걍 완전 직장 동료 그 이상이나 이하도 아니랬어요!! 근데 제 친구는 쌤이랑 국어 쌤이랑 같이 손잡은 거 봤댔거든요. 진짜예요?”

“… 허. 어..~ 그래 직장 동료지~! 호열 쌤은 내 직장 동료고, 아무 사이도 아냐~!!! 그리고!!! 친구끼리!!! 손 좀 잡을 수 있지!!! 너흰 손도 안 잡니? 이제 끝!! 너희 빨리 준비운동 하러 가!”

“아 넵~ㅋㅋ”

 

봤냐? 적중했잖아~

-

집에 가는 길은 언제나 백호와 함께한다. 아무래도 같은 아파트에 바로 옆집이다 보니 거의 동거 수준으로 살게 되었다. 함께 집 가는 길이면 좋다고 꼬리 흔들던 백호였는데.. 왜 이렇게 시무룩해 보이지..

 

“백호야.”

“호열아.”

“..”

“..”

“먼저 말해.”

“넌.. 내가 너한테 직장동료 그 이상! 그 이하! 친구도 아니냐!!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넌 그런 사람이랑 막..!! 막.. 막… 뽀뽀도.. 키, 키스도.. 야.. 야한 것도 하는 거냐!!! 어떻게 그래!!”

“뭐? 아니 무슨..!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어!! 당연히 사귀는 사이니까 그런 걸 하지!!! 미쳤나봐! 내가 그런 사람인 줄 알아!?”

“그러면! 그러면 왜.. 애들한텐 그렇게 말했어…”

“애들..? 아.. 야! 내가 그때 손잡고 가지 말자고 했지!! 내가 그때 기분이 좀 꼬름해서 안 된다고 했는데, 기어코 애들이 봐버렸잖아! 내가 그거 수습한다고 얼마나 애쓴 줄 알아? 그리고 그건 애들한테 말하는 거니까 그렇게 말한 거고. 난 분명히 친구가 맞다고 했거든? 내가 언제 친구도 아니라는 말을 했어!”

“그래도.. 섭섭해.”

 

하.. 미안해. 내가 너 좋아하는 거 알잖아.

 

“귀여워.”

“뭐?”

“아 실수. 말풍선 바뀌었다.”

“아~! 섭섭해!!!!!”

“알겠어! 알겠어.. 나 너 진짜 좋아하고, 친구가 뭐야 완전 내 남편이지. 네가 어떻게 내 친구야. 이게 친구면, 나 친구 없어.”

“그래야지. 어서 집에 가자. 나 배고팡.. 호여리가 해준 카레 먹고 싶어..”

“알겠어ㅋㅋㅋ 어서 집에 가자.”

 

하여튼 귀여워.

 

-

“아니 우리 그거 물어본 이후로, 체육이랑 국어 더 붙어다니는 거 같지 않음? 아니 체육이 그렇게 말하는 거 보고, 완전 빼박이었는데 걍 저러는 거 보면 숨길 맘이 1도 없어 보임..”

“아 개웃기네. 아니 체육 급발진하면서 개화낼 때 너무 웃겼음.. 광고하냐고. 난 체국으로 민다.”

“미친 거 아니야ㅋㅋㅋㅋ 체국 파이팅.”

 

드르륵!!!!

 

“야!!!!!ㅋㅋㅋㅋㅋㅋㅋ 체육이랑 국어 옥상에서 딱 붙어서 이야기 나누더라? 뭘 어떻게 하면 그럴 수 있는 거임? 아니 진짜 구라가 아니라 딱 붙은 수준이 딱 얼굴 돌리면 뽀뽀할 정도였다고!”

“미친ㅋㅋㅋ 학교에서 연애하면 사내 연애 아니냐?ㅋㅋㅋ 국어는 허락 안 해줄 듯. 양호열 쌤 개깐깐하고, 틈 안 주기로 유명하잖아. 아.. 그래도 내 호열 쌤.. 체육한테 주기는 싫음.”

“돌았나. 어서 보내줘. 강백호 선생님같이 드넓은 가슴엔 양호열 선생님같이 연약한 사람이 들어가야 세상이 돌아간다고.”

“개추.”

“아 개웃기네ㅋㅋㅋㅋㅋㅋ 응 그게 맞아. 반박 시 옥상으로 따라와. 바로 납득하게 해준다.”

 

아이들이 즐겁게 이야기를 나눌 때, 강백호와 양호열은 꽁냥거렸다. 그때와 같이 강백호는 양호열의 허벅지를 베게 삼아 누웠다.

 

“호여라. 뽀뽀.”

“미쳤어? 여기 학교야.. 니 직장이라고..”

“아무도 안 봐. 그때도 이렇게 네 뽀뽀 받고 싶었는데, 오늘에야 내가 이걸 받는구나.. 아 너무 행복해…”

“누가 해준다니? 웃긴 놈이네…”

“아 빨리! 애들 오면 체육이랑 국어 뽀뽀했다고 소문나니까 얼른~”

“하.. 정말..”

 

쪽..

 

“양호열은 날 너무 사랑한다니까..”

“내가 그때 하고 싶었던 말이 하나 있었는데..”

“그때?”

“네가 나한테 네 이야기 해줬을 때 말야.”

“아 내 머리 쓰다듬어 줬던..”

“응.. 그때.”

“그게 뭔데?”

“좋아해, 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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