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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한때의 전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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解けない 魔法の ような 御伽話 覚えてる?

풀리지 않는 마법같은 옛날 이야기를, 너는 혹시 기억해?

 

続きがまだ…うん、また話すね

뒷 이야기가 아직... 음, 나중에 말할까.

 

暗い 海に 浮かぶ 二人が 寂しくないように

어두운 바다에 뜬 두 사람이 외롭지 않도록

 

神様がきっと少しだけきっと 許した時間

신께서 분명 조금이지만 허락한 시간

 

- buzzG, “Fairytale,” 중 -

 

 

 카페 안에는 오후의 햇살이 스며들고 있었다. 낡은 커튼 사이로 흘러든 빛줄기가 테이블 위에 잔잔히 내려앉아 유리컵을 스치고, 동시에 테이블 위로 켜켜이 쌓이는 동그란 모양의 햇빛. 오래된 목재 벽은 세월의 얼룩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바래진 포스터와 벗겨진 벽지가 이곳을 흘러간 시간들을 말없이 증언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았던.

 

 창가 자리에 앉은 우리는 서로를 조용히 마주보았다. 한때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드나들던 곳. 대남이니 용팔이니 구식이니 하는 그리운 이름들이, 무심코 남겨둔 철없던 시절의 웃음소리가 벽지의 크고 작은 긁힘과 보풀만큼 배어 있는듯 했다.

 너무 많이 변했다. 이를테면 미국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한 이래 생긴 네 왼쪽 옆머리의 스크래치라거나, 늘어난 피어싱들, 손목의 작은 타투 같은 것들.

 동시에 아무것도 변하지 않기도 했다. 선명한 붉은색의 머리카락이나, 그보다도 환한 빛을 발하는 너의 눈빛 같은 것들.

어색한 듯, 그러나 결코 낯설지 않은 공기가 우리를 감쌌다..

 

 “오랜만이네.”

 

 네가 먼저 입을 열었다.

 

 “뭐야, 양호열. 그새 키 컸냐?”

 

 목소리에는 여전한 쾌활함이 묻어 있었다. 그러나 장난스레 미소를 띄우는 얼굴에서 묘하게 천진함이 덜했다. 어른스러움, 네게도 그런 단어가 어울리는 날이 오다니.

 

 “하하, 그럴리가… … 신발을 좀 높은 걸 신었나 봐. 백호 너야말로 더 큰 것 같은데?”

 

 이어 내가 짧게 웃어 넘기며 괜스레 구두 끝을 한번 내려다보았다.

 

 “나야 뭐. 계속 농구 하니까 -”

 

 네가 가볍게 이어가던 말끝이 허공에 흩어졌다.

 

 모름지기 어른이라면 조금은 어색한 상대일지라도 아무렇지 않은 척 웃으며 인사하는 법을 익혀두는 법이다. 설령 그 상대가 한때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몹시도 사랑했던 과거의 애인일지라도. 그러나 그 다음은? 때로는 어른이라 해서 모든 것을 저절로 알게 되는 것이 결코 아닐때도 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우리 사이에는 어색한 정적이 스며들었다.

 

 “이 카페, 다음 달에 문 닫는대.”

 

 한참 조용히 창 밖을 바라보던 나는 일부러 무심한 듯 입을 열었다. 그러면서 네 쪽을 흘끗 바라보았다.

 

 “엥. 그렇냐?”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했다. 한 때는 그것을 알아내는 일들이 나의 가장 큰 기쁨인 적 있었다. 

 

 “고등학생 땐 우리 아지트였는데. 뭔가 아쉽고만.”

 

 네 목소리에 작은 씁쓸함이 섞였다.

 

 “그러게. 뭐… 낡긴 했지. 시간이 흐르면 어쩔 수 없나 봐.”

 

 그것이 동시에 우리 두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었음을, 어쩌면 어른이 된 너는 눈치챘을지도 모르겠다.

 잠시 창가에는 고요가 내려앉았다. 유리잔 속 얼음을 빨대로 툭툭 건드리는 소리만이 시간을 메웠다.

 

 

重なり合う 星の モノグラムに 応えて

서로 겹친 별의 모노그램에 응해서

 

あなたが 来てるんだ 声を 張り上げて 軌道上の先へ

네가 온거야, 목소리를 높이며 궤도상의 끝으로

 

あなただけの輝きに憧れ続けてたの

너만의 반짝임을 나는 계속 동경해왔어

 

真っ白なまま 過ごした あの頃には 戻れないのに

아무것도 모른 채 지냈던 그 시절로는 돌아갈 수 없겠지

 

- buzzG, “Fairytale,” 중 -

 

 

 “백호야.”

 

 나는 네게서 시선을 거두지 않은 채 조용히 불렀다.

 

 “응?”

 “만나는 사람 있구나.”

 

 나는 네 손의 머무는 자리—접시 위로 비스듬히 드리운 그림자 끝—에 시선을 내려놓았다. 너의 손등이 미세하게 굳었다.

 

 “어엉?”

 “손에 반지.”

 

 너의 손가락을 눈짓했다. 반지의 둥근 금속이 카페의 백색등을 한 조각 받아 번뜩였다. 그 반짝임이 네 표정보다 먼저 대답하는 듯했다. 너는 순간 움찔하다가 곧 의기양양한 얼굴을 지었다.

 

 “얌마, 양호열. 자세히 봐라. 오른손이잖냐, 오른손!”

 

 묘하게 과장스런 말투에 나는 잠시 눈을 크게 떴다가, 이내 픽 웃으며 잔잔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는 양호열, 넌? 요즘 혼자 지내냐?”

 

 네가 묻자, 나는 잔을 만지작거리며 대답을 망설였다.

 

 “흠… 혼자는 아니고—”

 

 말끝을 길게 늘이던 그 순간, 네가 미세하게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긴장한 기색이 분명했다. 이를 눈치챈 나는 곧 웃음을 터뜨렸다.

 

 “고양이야, 고양이. 혼자 살다 보니 심심해서 기른 거지.”

 

 너는 헛기침을 했다. 그 모습이 네가 묘하게 ‘안도했다’고 느껴졌던 것은 나의 바람이었을까.

 

 “얌마, 양호열.”

 “응?”

 “너 요즘도 커피 못 먹는구만?”

 

 네 시선이 내 앞의 잔에 멈췄다. 차가운 유자차가 담긴 잔 표면에 물방울이 맺혀있었다.

 

 “그래, 임마. 너 커피 먹으면 밤샘 확정이었잖냐. 요즘도 그렇나보네.”

 “하하, 체질이 쉽게 변하지가 않더라고.”

 

  짧은 웃음 뒤 흐르는 잠깐의 침묵. 그 사이로 스팀 노즐이 멀리서 한 번 숨을 내쉬었다. 잔 표면의 얕은 물결이 미세하게 일렁였였다. 잔잔한 음악 소리와 함께 공기만이 무겁게 움직였다.

 

 “기억하고 있었구나.”

 

 조금 낮아진 목소리로 내가 대답했다.

 

 “당연하지 임마. 우리가 같이 보낸 시간이 몇 년인데.”

 

 ‘몇 년’이라는 단어가 공기 속에 길게 남았다. 이내 천천히 가라앉아 테이블 밑 그림자에 머물렀다. 사라진 것은 없고, 다만 서로의 손이 닿지 않는 자리로 옮겨진 것들만 남았다.

 

 

時の 魔力が 変えた 枝垂れ 桜の 遊歩道も 心も

시간의 마력이 바꿔버린 벚꽃도, 산책길도, 마음도

 

気付いてしまっても 振り向かないでね

혹시 눈치 챘더라도 뒤돌아보진 말아줘

 

- buzzG, “Fairytale,” 중 -

 

 

 손님이 눈에 띄게 줄었기에 커피 볶는 향은 예전만큼 강하지 않았지만, 어쩐지 그 은은한 냄새마저 추억처럼 느껴졌다. 낮게 깔린 재즈 음악이 흐르고, 바깥의 차가운 바람이 문틈을 스치며 안으로 스며들었다.

 

 “미국엔 곧 돌아가지?”

 

 음악 소리 사이로 머무는 정적을 깬 것은 나의 질문이었다.

 

 “글치. 지금도 그냥 잠시 들르는 거야.”

 “멋있구만— 넓은 세상에서 산다는 건.”

 

 유리창 너머의 빛이 네 눈동자에 짧게 반짝이고, 그 때였다.

 우리의 시선이 정확히 맞물렸다. 

 

 “호열아.”

 “응?”

 “그때, 나 미국 간다고 했을 때—”

 “…응.”

 “사귀는 사이인데도 보내줘서 고마웠다.”

 

 나는 입술을 지그시 다물었다가, 입꼬리를 조심스레 올렸다. 소리가 나지 않는 웃음이 얼굴 표면에 얇게 번졌다. 유리잔 벽면의 물기가 미세하게 흘러내렸고,

 “사랑하는 사람이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겠다는데, 막을 사람이 어디 있냐.”

 

 대답을 내놓고도 한동안 말을 덧대지 않았다. 

 ‘그때의 내가 조금만 더 대담해서, 너와 함께 갔다면 우리는 어떻게 되었을까.’ 라고 떠올린 문장이 혀끝까지 올라와 잠깐 머물다가 ㅡ 단전 아래 어두운 곳으로 조용히 가라앉는다.

 

 네게 굳이 말하지 않는 것. 그것은 내가 아주 오래 전 너와의 사랑을 감출 적 부터 익혀온, 너를 위하는 나만의 방법이었으니까.

 

  “... … 슬슬 일어날까? 뒤에 일정이 있어서.”

  “역시 농구스타야, 바쁘셔.”

  “그럼! 천재님을 뵙겠다는 녀석들이 한둘이 아니라 말이지!”

 

 네가 우하하 웃으며 씩씩하게 답했다.

 

  “여전하구만.”

 

 한 때 내가 정말 좋아했던 그 표정, 그 목소리, 그 눈빛 그대로.

 

  “응?”

  “아냐, 혼잣말.”

 

 흠, 하고 가볍게 숨을 고른 뒤, 너는 의자 등받이에 걸어 둔 점퍼를 털어 들었다. 컵받침이 테이블을 떠나는 소리가 얇게 긁히고, 너의 휴대전화와 키가 주머니 속에서 서로 부딪혀 작은 금속성 소리가 났다. 

 

 “아 참, 호열아. 계산은 내가 할 ㄱ-”

 “... … 어울리지 않게 커피 못 마시는 거, 꼴사납다고.”

 “어엉?”

 “남자가 유자차같이 단 것 좋아하는 것도 별로라고.”

 “... …”

 “... … 고양이가 그랬어.”

 

 침묵, 그 너머로 들려오는 잔을 내려놓는 소리, 에스프레소 머신이 내뿜는 김의 치직거림, 누군가 낮은 목소리로 부르는 주문 소리. 너는 괜히 창밖을 흘낏 보았고, 나는 그런 너를 잠시 바라보다 말없이 컵 속의 음료를 내려다보았다. 

 

 “그거 아냐.”

 “응?”

 “... … 난 네 그런 부분들이 좋았다, 호열아.”

 “... … 그랬구나.”

 

 수면 위로 어느샌가 나이를 제법 먹어버린 얼굴 하나가 물끄러미 이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표면이 희미하게 일렁일적마다 오래전의 시간과 감정이 말 없는 틈마다 고개를 내밀었다. 결국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해버렸다.

 

 아무렇지 않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정확히는, 아무렇지 않고 싶었는데.

 아니, 애초에 아무렇지 않을 수가 있었던걸까?

 

 

一人では 輝けない 私からね

혼자서는 빛날 수 없는 나에게

 

御伽話の 続きが あるの 聞いておいて

옛날 이야기의 뒷이야기가 있어. 들어줄래?

 

「久しぶりね」

"오랜만이야."

 

- buzzG, “Fairytale,” 중 -

 

 

“그럼 진짜로 일어날까? 아. 계산은 아까 해놨어.”

“누옷!? 언제!?!?”

“하하하. 하여간 강백호 이런 부분은 되게 둔하다니까.”

 네가 먼저 의자를 밀어냈다. 의자 다리가 바닥을 스치며 짧게 끽— 하고 숨을 뱉고, 몰래 쥐고 있던 영수증이 내 손끝에서 반으로 접혔다가 주머니로 미끄러졌다. 나는 빈 잔을 한 번 돌려놓고, 유리 벽면에 남은 물자국을 괜시리 엄지로 지워 보았다. 뿌옇던 자국이 금새 투명하게 지워진다. 애초에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처럼, 덧없게도.

 카페 문이 열린다. 문 위의 작은 종이 한 박자 늦게 울려, 방금까지 우리 자리에 남아 있던 온기를 살짝 흔들었다. 조금 서늘해진 바깥 공기가 헛헛하게 품속을 파고든다.

 

“어디로 가”

“나 이쪽.”

“아, 난 반대편.”

“어어. 오랜만에 만나서 … 반가웠다.”

“맞다. 백호야.”

“엉?”

 

 카페를 나서며 나는, 계속 말할까 말까 고민하던 것을 결국 말하기로 했다. 오늘이 지나면, 더 이상 네게 전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묘한 직감이 들었다.

 

“다음번엔 반지, 왼손에 제대로 끼고 와.”

“... …”

“결혼하는거지?”

 

 슬프게도, 때때로 어떤 직감들은 너무나도 정확히 들어맞기도 한다.

 

 너의 발걸음이 잠시 멈췄다. 나는 그저 묵묵히 서서, 네가 고개를 돌리려다 말고 주머니 속에 반지 낀 손을 꾹 찔러 넣는 것을 바라만 보았다. 내가 그 말을 흔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꺼내기 위해 카페에서 너를 마주보던 시간동안 속으로 얼마나 연습했는지, 네가 눈치채지 않았기를 바라면서.

 

“…아직은. 아마 내년쯤 할 것 같긴 해.”

“미리 축하한다.”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 너의 등을 가볍게 두드리며 아무렇지 않은 척 말했다. 이것 역시 오늘이 지나면 기회가 없을 것이므로.

 

“그럼 나 간다.”

“... … 양호열!!! 나 다음번에는, 반지 왼손에 제대로 낄 테니까 - ”

“응? 안 들려 - ”

“... …”

“... 아냐. 잘 가라고.”

 그런 너를 잠시 바라보는 나. 너의 말이 잘 가라는 인사에서 더는 이어지지 않았고,

 

“... … 너도 잘 가.”

 

 결국 쓰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우리는 반대 방향으로 걸어갔다. 너의 농구화가, 나의 낡은 구두가 보도블럭과 맞닿는 소리만이 서로의 멀어짐을 대신 세었다.

 

 나는 돌아가다 말고, 정말 마지막으로 뒤돌아섰다. 익숙한 발소리, 그 리듬이 멀어질수록 네 뒷모습의 윤곽이 흐릿릿해졌다. 어깨, 등, 깃, 그리고 그 아래로 접히는 그림자. 눈으로 더는 붙잡을 수 없게 된 순간, 마음이 먼저 놓았다.

 

 네가 반지를 제대로 끼고 나를 다시 만나면

 그때는 정말로 결혼한 이후겠지.

 

 아.

 이제는 정말로, 정말로 돌아갈 수 없는거야 우리는,

 예전으로.

 

 내 한때의 전부에게 작별을 고하던 그 날은 생각보다 슬프지 않았다. 다만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이 뺨에 남은 물자국을 옅게 말릴 뿐이었다.

 

 

重なり合う 鼓動が 命の 瞬きを 教えてくれてる

서로 겹쳐지는 고동이 생명의 반짝임을 가르쳐 주고 있어

 

誰の 愛を 受けても 消えないでしょう

누구의 사랑을 받아도 사라지지 않겠지

 

あと 数秒で 離れていく 星を 見送るなら

앞으로 몇 초 후에 떠나갈 별을 배웅한다면

 

例え 何千年 経っても 会えるから そういう話よ

설령 몇 천 년이 지나더라도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는, 그것뿐인 이야기

 

約束ね

야쿠소쿠네

약속해줘

 

- buzzG, “Fairytale,”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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