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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장개업, HeMeets.jpg

신장개업

알바와 농놀

@notgoodtoseeyou

HeMeets - 신장개업

“백호야, 어딨어?”

숨바꼭질이야? 웃음기 어린 다정한 목소리와 다르게 손에는 시퍼런 중식도가 살벌하게 빛난다. 백호는 그를 피해 커다란 몸을 선반 뒤에 최대한 욱여넣으며 두근거리는 심장을 최대한 억눌렀다. 손이 벌벌 떨린다. 죽는다. 진짜 죽는다. 잡히면 죽는다!

 

왜 이런 꼴이 되었는지, 다시 생각해보면 몹쓸 호기심 때문이다.

 

한국 최초 NBA 농구선수 강백호는 이번에 휴가를 맞아 고국으로 돌아왔다. 한동안 실컷 게으름을 피우고 그동안 못 본 그리운 얼굴과 따스한 고향의 맛을 볼 예정이었다. 지인들은 그를 위해 기꺼이 연차를 내고 주말을 비웠지만 그것도 몇주나 이어질 수는 없는 법. 백호는 귀국한 지 보름쯤 되자 평일에 할 일이 없어졌다. 게으름을 피우려고 했지만 운동선수란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근질거려서 견딜 수 없는 녀석들이다. 드라이브를 갈까 잠시 고민하던 그는 러닝화를 신고 가볍게 동네를 뛰기로 했다.

 

오랜만에 뛰는 길은 많은 게 변했다. 흙바닥이던 횡단보도 삼각지에는 꽃을 심어놨고 길에는 노란색 페인트가 칠해졌다. 깜박이면 눈치껏 전력질주해야 했던 신호등은 이제 불이 바뀌기까지 몇 초 남았는지 알려준다. 후눗, 신기하다. 백호는 5초 남은 거리를 후딱 뛰어간다. 땡땡이 칠 때 뛰어넘던 낙서로 가득한 담벼락은 지금은 페인트로 곱게 칠하고 알록달록한 조형물에 길 어둡지 말라고 조명도 달려있다. 그럼에도 구조만큼은 예전과 똑같아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데에 문제는 없었다.

 

“오, 교복은 그대로네.”

 

옛 기억은 담벼락 너머 학생들을 보자 새록새록 더 많이 떠오른다. 시간이 이만큼 흘렀는데도 여전히 똑같은 시꺼먼 교복. 저 교복으로 개성을 뽐내겠다고 친구 녀석들과 열심히 줄이고 늘이느라 난리였다. 자켓을 줄이고 늘이고 바지 통은 무조건 헐렁하게! 그땐 그게 가오이자 멋이었다. 벨트 색이라도 겹치는 날엔 전쟁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별 일 아니지만 그땐 꽤 중요한 문제였다. 참 별 거 아닌 걸로도 싸웠지. 그래도 재밌었다며 누하하 웃던 그는 이제는 연락도 잘 안 하는 친구들이 떠오른다.

 

한 때 백호군단이라고 불리던 모임은 이제 없다. 영원할 거라고 생각한 친구들도 헤어질 수 있다는 걸 백호는 이제 안다. 군단과는 크게 싸웠다. 싸운 이유가 뭐였는지 잘 기억 안 난다. 별 시덥잖은 일이었겠지. 화해할 기회는 백호가 시차와 거리 때문에 흐지부지해졌다. 화해도 타이밍이 있다. 그치만 지금쯤 귀국했다고 소문이 쫙 퍼졌을 텐데 문자 하나 안 보내는 건 좀 너무하네. 하여튼 셋 다 의리가 없어. 귀국 첫날 고릴라랑 안경이 마중나오지 않았으면 백호는 무척 허전했을 것이다. 훌쩍. 5월인데도 아직 싸늘한 바람에 요란하게 재채기를 한 백호는 흘끗거리는 학생들의 시선에 어쩐지 이상한 아저씨가 된 거 같아 머리를 긁적이며 자리를 피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갈까 싶을 때 그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때깔부터 새로 만든 느낌이 나는 반질반질한 중화 요리집. 보통 막 개업한 가게는 여길 보라고 온 몸으로 광고하는 현수막과 화환을 두기 마련인데 이 중국집은 '신장개업' 이 네 글자만 붙여뒀다. 그게 특이하기도 했고 오랜만에 짜장면이 먹고 싶어져 백호는 중국집으로 들어갔다.

 

가게는 제법 넓었다. 막 인테리어 한 가게답게 바닥이나 테이블, 벽이 붉은 테마로 무척 깔끔했다. 그런데 어쩐지 으슬으슬한 거 같고 조명이…

 

“좀 어둡죠?”

“후눗!”

“어서 오세요.”

 

소리없이 다가온 이는 새까만 머리카락 탓에 피부가 창백해 보이는 남자였다. 말끔하게 올린 머리는 백호가 고등학생 때나 하던 철지난 스타일인데 신기하게 무척 잘 어울린다. 깜짝 놀라 이상한 소리를 낸 백호를 무표정한 얼굴로 빤히 바라보던 남자를 조명을 잘못 골랐다며 미소를 지었다. 부자연스러운 입매와 죽은 생선 같은 눈동자가 꼭 시체를 억지로 웃게하는 것 같았다. 창백한 안색으로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직원과 어둑한 가게, 이상하게 싸늘한 공기. 뭔 흔한 괴담 도입부 쓰리콤보 같은 상황에 백호는 조금 당황한다. 뭐지 여기.

 

“주문하시겠어요?”

“네.”

 

그러나 이대로 나가기엔 너무 배가 고팠다. 평범한 사람이면 벌써 겁을 먹고 실례했습니다. 하며 백스텝으로 나갈 비주얼도 현직 잘나가는 운동선수 전직 양아치라면 견딜 수 있다! 후딱 먹고 나갈 생각으로 그는 자리에 앉아 메뉴판을 흩어봤다. 호주머니에 4천원밖에 없어서 선택지는 적었다. 요즘 물가가 왜 이렇게 올랐냐.

 

“짜장면 곱빼기 같은 보통 하나!

 

마음 같아선 짜장면 뿐만 아니라 짬뽕볶음밥탕수육깐풍기라조기팔보채양장피까지 다 먹고 싶었으나 이제 300원 내고 뭐 뺏어올 나이는 아니다. 가게 분위기도 이상한데 얼른 먹고 나가려는 백호를 보며 직원은 묘한 미소를 짓더니 주방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직원은 큰 쟁반을 들고왔다. 서비스라며 짜장면 곱빼기에 군만두와 산처럼 쌓인 탕수육까지 가져온 것이다. 후눗. 좋은 사람. 백호는 기괴한 직원을 좋은 사람으로 수정하며 나온 음식을 순식간에 다 먹어치웠다. 무지무지 맛있었다. 얼마나 맛이 좋았는지 평소보다 급하게 먹었던 거 같기도 하다. 먹는 내내 저를 바라보는 직원의 시선이 느끼지 못할 정도였다. 뒤늦게 알아채고 머쓱하게 입을 닦고 있으니 그는 웃음을 지었다. 이번에는 자연스러운 미소였다.

 

“오늘 개시를 잘한 거 같네요.”

“눗?”

 

백호는 고개를 갸우뚱 기울인다. 아닌 거 같은데. 지금 점심 시간인데 손님이 하나도 없잖아. 먹는 내내 손님은 커녕 배달 주문 전화 한 번 안 왔다. 아주 파리가 날리는데. 만족스럽게 식사를 마치고 계산을 하자 그가 백호에게 무언가를 내민다. 스티커였다. 손바닥만한 크기에 메뉴, 가격, 그리고 직원과 닮은듯한 허접한 캐릭터까지 들어있으면서 정작 가게 전화번호는 없는 이상한 스티커였다. 왜 전화가 전혀 안 왔는지 알겠다.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니 인쇄가 잘못되었다며 그래도 받아가라고 한다. 됐어요. 했더니 또 미친 동태 눈깔로 빤히 쳐다봐서 결국 받아왔다. 냉장고에 붙여야겠다.

 

그날 밤 내내 속이 부대껴서 백호는 잠을 잘 수 없었다. 오랜만에 기름진 걸 너무 많이 먹어서 그런가. 생전 안 먹던 소화제를 먹고서야 그는 잠이 들 수 있었고, 며칠 뒤에 또 그 중국집을 갔다. 고생했으면서 또 간 이유는 간단하다. 서비스가 무척 끝내주고 맛있었기 때문이다. 서늘하고 손님 하나 없는 가게에 직원은 살짝 정신이 이상해 보였지만 여태 먹어본 중국집 중 제일 맛있었다는 특이점은 백호의 엉덩이를 움직이게 했다. 일주일에 한 번. 닷새에 한 번. 사흘에 한 번 꼴로 가게에 가자 백호는 자연스럽게 단골이 되었고,

 

“어서 오세요.”

 

소름끼치지만 서비스 많이 주는 직원과도 자주 이야기를 나눴다. 우선 그는 직원이 아니라 사장이었다.

 

“엄청 젊어보이는데!”

“일찍 시작했거든요.”

 

그는 저를 양 사장이라 소개하며 고등학생 때부터 중국집에서 일했다고 했다. 사장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요리는 직접 할 때도 있고 안 할 때도 있단다. 어디 출신이냐고 물어보니 이 근방이라고 했다.

 

“오! 그럼 나 몰라요? 천재 강백호! 이 동네 명물!”

“글쎄요……”

 

내 싸인 걸어드릴까! 외치려던 강백호는 머쓱하게 입을 다물었다. 이 동네 출신이면 날 모를리가 없는데. 잠깐 갸우뚱했지만 뭐 능남 출신이겠거니 한다. 양장피가 끝내주게 맛있었다.

 

가게에는 양 사장 말고 요리사가 또 있다. 주방에서 영 나오질 않아 아직 한 번도 만나지 못했지만 가끔 커다란 그림자가 주방으로 향하는 복도에서 어른거리는 걸 보았다. 그 요리사라는 사람은 요리를 무척 잘하는 모양이다. 이 집은 모든 요리가 맛있고 특히 짜장면이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맛이다. 오늘도 배부르게 먹은 백호는 만족스럽게 계산했다. 또 스티커를 줘서 받아왔다.

 

시간이 지날수록 백호는 이제 거의 매일 중국집을 드나들었다. 체중이 좀 걱정되긴 했지만 휴가는 아직 길게 남았다. 오늘도 양 사장네 중국집에서 식사를 해결하려고 했는데 낮잠을 자다가 저녁이 되었다. 클로즈 시간이 되기 전에 가려고 이제는 익숙한 '신장개업' 글자만 붙어있는 곳으로 뛰어가다가 멀직히 초록색 츄리닝을 입은 남자가 중국집으로 들어가는 게 보였다. 누우웃 드디어 양 사장네 중국집에 손님이! 백호는 자기가 사장도 아닌데 그 손님이 반가워 한달음에 달려갔다. 이제 금방 유명해지는 거 아냐? 줄 서서 먹어야 하는 거 아냐?! 그래도 나 단골인데 양 사장이 받아주겠지? 이미 혼자 한껏 친해져 일방적으로 반말도 하는 강백호가 힘껏 문을 열어젖히며 소리쳤다.

 

“양 사장! 손님 받았네!”

 

그러나 가게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어라? 눈만 끔벅이고 있자 양 사장이 주방에서 나온다. 오늘은 요리를 하는지 손에는 중식도가 들려있었다.

 

“어서 오세요. 오늘은 좀 늦으셨네요.”

“손님! 손님은? 아까 들어가는 거 봤는데! 첫 손님 아냐? 어딨어! 뭐 시켰어!”

“보셨군요.”

 

양 사장이 입꼬리를 올린다. 그는 동그란 회전 테이블이 들어있는 특실을 고개짓했다. 늘 혼밥하는 백호는 보기만 했을 뿐 한 번도 들어간 적 없는 곳이다.

 

“특실로 들어갔어요. 특선요리 코스를 주문하셨죠.”

 

백호는 메뉴 한 구석에 있던 가장 비싼 메뉴가 떠올랐다.

 

“오오! 오늘 매출 좀 있겠는데!”

“서비스 달라는 거죠?”

“축하하는 거거든.”

“뭐로 드릴까요.”

“안 먹어본 거!”

 

양 사장은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서비스를 듬뿍 주었다. 늘 많이 주긴 했지만 이번에는 가재 요리가 나왔다. 랍스터는 먹어봤지만 가재는 처음 먹어본다. 이거 배보다 배꼽이 큰 거 아닌가 싶지만 주니까 일단 먹는다. 맛있었다. 이 집은 왜 다 이렇게 맛있는지. 중화요리란 정말 끝내준다! 백호는 열심히 조그만 가재들을 발라먹고 약간 밍밍하지만 여전히 맛있는 짜장면을 흡입했다. 흡입하려고 했다. 갑자기 비명소리가 들리지 않았다면.

 

“……?”

 

잘못 들었나?

 

“양 사장? 뭐 떨어뜨렸어?”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뭐지? 혹시 칼 떨어뜨렸는데 발등에 꽂히기라도 했나? 주방으로 향하는 복도에 커다란 그림자가 또 일렁인다. 백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양 사장을 부르며 주방 앞을 기웃거린다. 주방은 붉은 천으로 된 문발이 걸려있다. 문발을 걷기 직전 양 사장이 나왔다.

 

“주방에는 들어오면 안되지.”

 

평소보다 더 창백한 얼굴에 새까만 눈동자가 반들거린다. 아, 그 동태 눈깔. 양 사장은 다른 사람 같은 얼굴로 백호를 응시한다. 손에 든 뭔가에서 빛이 번쩍인다. 중식도를 든 양 사장이 땀이 흐르는 뺨을 소매로 닦는다. 백호는 놀란 티를 내지 않려고 노력하며 한걸음 물러났다.

 

“쏘리. 안에서 소리가 들려서. 무슨 일 생겼나 했지.”

“요리사가 냄비를 떨어뜨려서… 다 쏟았더라고요.”

“눗! 그거 큰일이네.”

 

양 사장은 서서히 평소에 백호를 대하던 얼굴이 되었다. 중식도가 든 손을 등 뒤로 숨기며 그의 눈은 생기가 서리고 입은 자연스러운 미소를 짓는다. 백호는 그 모습을 빠짐없이 지켜보았다.

 

“다 먹었어? 부족하진 않아?”

“엄청 배불러. 오늘도 잘 먹었어, 양 사장.”

“별말씀을. 계산 도와드릴게요.”

 

계산은 내가 하는건데 어떻게 도와줄라구? 양 사장이 쏘는 거야? 백호의 너스레에 양 사장이 질색한다. 아저씨 같이 굴기는. 아저씨라니!! 백호는 한바탕 왁왁 열을 내다가 이내 웃으며 인사하고 가게를 나왔다. 다음에는 나도 특선이나 시켜볼까.

 

 

너희 요즘 강백호랑 연락 되냐?

 

아니.

 

그 녀석 대체 뭐하고 지내는 거야?

 

 

백호는 이제 매일 중국집을 드나들었다. 혈관에 피가 아니라 춘장이 흐를지도 모르겠다. 의외로 체중은 많이 늘지 않았다. 꾸준히 운동을 하고 있지만 기름진 음식을 먹어도 체중 조절이 잘 되다니 신기하다며 말하자 양 사장은 다 신비한 비법이 있는 거라고 했다. 자주 맛있는 음식을 먹은 덕인지 미각의 수준이 무척 올라간 백호는 양 사장이 요리한 건지 거대 요리사가 요리한 건지 구분하기도 했다. 백호가 그걸 알아채자 양 사장은 의외로 민망해했다.

 

“난 요리사는 아니니까…”

“글킨 하지.”

 

이야기를 해보니 동갑이라 두 사람은 금방 말을 텄다. 만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오랜 친구 같은 친근함이 있을 정도로 백호는 양 사장과 은근 죽이 잘 맞았다. 그래도 튀김은 제가 더 잘한다는 양 사장의 주장에 강백호는 실실 웃는다. 그래애. 양 사장은 순식간에 싸늘한 얼굴이 되었다. 그래도 전처럼 동태 눈깔은 아니었다.

 

“오늘부터 서비스는 끝입니다.”

“후눗?!”

 

앞으로 군만두 서비스나 대짜같은 소짜 탕수육이 없어진다고? 안 돼, 그건 내 인생의 낙이야! 강백호는 오늘의 서비스 : 탕수육 쟁반을 꼭 붙잡고 열심히 입에 넣으며 아양을 떨었다.

 

“아우 양 사장님 탕수육 최고지! 완전 짱! 완전 튀김 천재!”

 

그러자 그가 소리없이 웃는다.

 

“천재는 너잖아.”

 

백호의 젓가락질이 멈췄다.

 

양 사장은 정말 이상한 사람이다. 그 이상한 분위기야 말할 것도 없다. 사장이면 좀 헐렁해질 법 한데 늘 말끔하게 머리를 올리고 깔끔한 옷을 입는다. 이제껏 본 손님이 양 손에 꼽히고 백호가 모조리 기억할 정도로 장사가 드럽게 안 되는데 걱정도 안 하는지 항상 백호를 웃는 얼굴로 맞이한다. 가끔 눈을 이상하게 뜬다.

 

그런데 그가 하는 말은 뜨겁게 달군 바늘처럼 이상하게 백호를 콕 찌르는 게 있다. 그다지 특별한 말도 아닌데, 선수생활을 하면서 처음 듣는 말도 아닌데 기억 저편에서 저 목소리와 묘하게 겹치는 비슷한 목소리가 있다. 그리고 저 얼굴도, 동갑이라면서 고등학생처럼 웃는 저 얼굴도 이상하다. 늘 소리없이 웃는 것도 이상하다. 그가 저렇게 웃고 있을 때면 이 붉은색 인테리어로 가득한 중국집에서 잘못 떨어진 푸른 물감처럼 이질적이다. 원래 저런 사람이 아니었을 거라는 이상한 망상이 든다. 전에 양 사장을 만난 적이 있나? 왜 이렇게 기시감이 들지? 뭔가 떠오를듯 말듯한 찝찝한 감각.

 

그때 양 사장이 서비스로 가지튀김을 가져다 줘서 백호는 생각을 그만뒀다. 바삭한 튀김과 부드러운 가지의 조화가 입에서 살살 녹았다. 배부르게 먹고 계산하면서 또 스티커를 받았다. 이제 냉장고는 붙일 곳이 없다.

 

오늘도 백호는 그 중국집으로 갔다. 이제는 하루의 일과다. 온화한 바람이 제법 길어진 빨간 머리카락을 스친다. 날씨는 갑자기 더워지는듯 싶더니 또 시원해졌다. 요즘 날씨는 이랬다 저랬다 이상하다니까. 뭐, 봄이란 게 다 그렇지. 툴툴거리던 강백호는 문득 어디로 놀러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양 사장에게 함께 가자고 말해볼까. 생각만 했는데 백호의 입꼬리가 벌써 귀에 걸린다. 휴일도 없이 매일 매일 안 빼먹고 가게를 여는데 하루쯤은 쉬어도 되지 않나? 손님도 나밖에 없잖아. 봄소풍도 좋겠다. 분명 재밌을 거다. 걸음을 더 빨리하던 백호의 눈에 담벼락에 붙어있는 전단지가 들어온다.

 

전단지에는 글자가 진한 빨간색으로 크게 적혀있다. 사람을 찾습니다. 그 밑으로 이어지는 사진과 이름, 나이, 일시, 장소, 신체 특징, 착의사항. 이런 건 놓치지 않고 보는 백호의 시선이 착의사항에 머문다. 30대 남성에 초록색 츄리닝. 초록색… 전에 중국집으로 들어가던 초록색 츄리닝의 남자가 생각난다. 그리고 부엌 안 쪽에서 들렸던 비명소리과 양 사장의 손에 들려있던 중식도와 뺨을 닦아내던 양 사장의 소매에 묻은 붉은 얼룩도. 백호가 식사를 마치고 나갈 때까지 조용하던 특실도.

 

그대로 집으로 돌아가 오랜만에 노트북을 켰다. 실종자 찾습니다. 수백명의 사람들 목록에서 지역을 이 동네로 제한하자 인원은 10명 내외로 줄어든다. 손끝이 조금 떨린다. 그들의 인상착의가 익숙했다. 모두 백호가 본 적 있는, 양 사장네 가게로 왔던 사람들이었다.

 

설마 양 사장이? 목덜미에 소름이 돋는다. 에이 설마. 그냥 우연이겠지. 불안하게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실종된 날짜를 확인하는데 갑자기 요란하게 전화벨이 울린다. 백호는 너무 놀란 나머지 어깨를 들썩였다. 아오, 놀라게 하기는. 그나저나 간만에 듣는 벨소리다. 백호는 얼른 전화를 받았다.

 

- 강백호!!

 

받자마자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는 아주 오랜만에 듣는 목소리다. 백호의 고등학생 시절 친구, 이용팔이다.

 

- 야 이 미친놈아. 연락이 왜 안 돼?!

 

“넌 10년만에 전화해서 대뜸 욕부터 하냐?”

 

- 장난 말고 어디냐고!

 

“소리 좀 그만 질러, 짜식아! 연락은 지들이 안 해놓고는 이 의리없는…?”

 

백호는 이메일이 999+통이 넘게 쌓인 걸 발견한다. 999+? 어떤 미친놈이 스팸을 이만큼이나 보낸거지? 백호의 시선이 노트북의 오른쪽 아래로 향한다. 두 눈으로 보아도 믿기지 않았다.

 

- 이메일도 전화도 안 받은 건 너잖아! 갑자기 잠수 타서 지금 난리가 났다고 임마!

 

왜 10월이지?

 

백호는 순식간에 혼란스러워졌다. 10월이라고? 휴가는 5월에 시작했다. 두 달 쉬었다가 다시 돌아갈 예정이었다. 황급히 메일함을 열어보니 에이전시와 감독, 코치, 심지어 동료들에게서 온 연락으로 가득하다. 정신이 아득해진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5개월이 지났다고?

 

“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나도 모르겠다. 분명 5월이었는데?”

 

- 미친놈아! 대체 뭐하고 산 거야!

 

시즌 시작하기 직전이다. 당장 짐을 싸서 출국해야 했다. 허둥지둥 일어나서 귀국할 때 가져온 캐리어를 꺼낸다. 언제 먼지가 이렇게 쌓였는지 모르겠다. 용팔의 말대로 대체 뭐하고 산 건지 모르겠다. 그동안 무슨 정신으로 지낸거지? 뭘 하며 지냈지? 전화 너머로 잔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채치수도 송태섭도 심지어 안 감독도 혹시 백호와 연락 안되냐며 전화했다고 대남이 녀석은 실종 신고하기 직전이고 노구식은 그러면 매스컴을 타서 강백호가 진짜 제명될지도 모른다며 바지 붙잡고 말리고 있다고. 한탄과 비난 그 사이의 말을 쏟아내던 이용팔은 한숨을 쉰다.

 

- …너 설마 아직도 양호열 찾고 있냐?

 

머리에 벼락이 친다. 여태 잊고 있던 이름이었다.

 

- 벌써 10년이나 됐잖아.

 

그 녀석을 어떻게 잊었지? 백호는 어지러울만큼 혼란스러워진다. 뭔가 잘못된 게 분명하다. 왜 여태까지 호열이를 잊고 있었는지, 왜 전혀 떠오르지도 못했는지.

 

- 네 인생을 좀 살라고. 호열이가 니가 이러는 걸 바라겠냐?

 

아무도 없는 집에서 시선을 느낀다. 돌아보면 벽 한면을 가득 채운 스티커 속 양 사장이 백호를 바라보고 있다. 식칼을 들고 웃고 있는 얼굴. 속이 울렁거렸다. 아…

 

양 사장은 이상하다. 그 중국집은 위험하다고 그의 감이 말한다. 그럼에도 백호는 가야했다.

 

그날 밤. 백호는 눈 감고 갈 만큼 익숙한 길을 걸어간다. 봄이라고 생각했던 날씨는 완연한 가을이다. 왜 여태 이걸 몰랐는지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낙엽이 날리는 가을 바람을 맞으며 여태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게 하나씩 떠올랐다.

 

백호가 백호군단과 다툰 이유는 양호열이었다. 그의 가장 가까운 이해자는 10년 전, 고등학교 졸업식 날을 하루 남겨두고 실종되었다. 백호군단이 백방으로 찾아보았지만 전혀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집도 그대로였고 없어진 짐도 없었다. 교복과 신발만 없었다. 그는 교복 차림으로 사라진 것이다. 호열은 가족이 없어서 물어볼 사람도 없고 딱히 갈 곳도 없다.

 

당연히 실종 신고를 했으나 시간이 지나도 진전되는 건 없었다. 처음 1년은 속이 타서 제발 무사히 돌아왔으면 했고, 그 뒤로는 사고가 났더라도 목숨만 붙어있길 바랬고, 이제는 하다못해 시체라도 나타나길 빌었다. 세계적인 농구선수가 되었어도 호열이를 찾는 걸 멈추지 않았다. sns나 인터뷰에서 호열의 이야기를 자주 꺼냈다. 혹시 누군가 호열을 찾아준다면 사례하겠다는 말을 항상 덧붙였다. 거짓 제보가 수 천개씩 쏟아졌지만 백호는 한 명도 허투로 넘기지 않고 확인했다. 체력과 정신력을 많이 소모하기 때문에 때문에 가끔 컨디션이 안 좋을 때도 있었지만 백호는 견뎠다. 그러나 스물 후반이 되자 그의 몸은 견뎌주지 못했다.

 

경기 중에 백호는 부상을 입었다. 다행히 큰 부상은 아니었지만 재활 겸 휴가를 받을 정도였다. 보다못한 같은 구단의 태섭이 백호군단에게 연락을 넣었고, 백호군단이 왜 이렇게 미련하게 구냐고, 이제 네 인생 좀 살라는 말에 백호는 크게 화를 내며 싸웠다.

 

강백호도 안다.

10년이나 사람이 실종되었으면 그건 이미 죽었거나 작정하고 숨은 거다.

다만 그 이유를 듣고 싶었다. 왜 떠났냐고.

혹시 내가 좋아한다고 말해서 떠난 거냐고, 한 번만 물어보고 싶었다.

 

물론왜중국집을차려서사람들을납치하냐고혹시짜장면에사람고기넣은거냐고혹시미쳤냐고혹시정신나갔냐고나한테이상한거먹인거아니냐고어쩐지서비스를많이주더니넌악감정이있으면말로하지먹을거로치사하게그러냐고B급공포영화너무많이본거아니냐고 등등 여러가지도 물어보고 싶었지만 일단 만나서 얘기해볼 생각이다. 가는 길에 편의점에서 마스크와 목장갑을 샀다. 이유는 간단하다. 지금 새벽 2시이기 때문이다. 가게는 당연히 문을 닫았다. 불이 꺼진 간판을 바라보던 백호는 문을 밀었다. 잠겨있다.

 

“양 사장! 나왔어. 문 좀 열어봐.”

 

대답은 오지 않는다. 백호는 3초만 더 기다렸다가 문을 힘줘서 밀었다. 시끄럽게 덜컹거리던 문은 잠금쇠가 부숴지면서 열렸다. 가게 안은 가로등 불빛이 닿지 않아 깜깜했다.

 

“양 사장, 아니 양호열!”

 

백호는 안을 둘러보다 부엌에서 희미하게 빛이 새어나오는 걸 보았다. 그는 망설임 없는 걸음으로 부엌으로 들어갔다.

 

안은 평범한 부엌 같았다. 오히려 깨끗했다. 벽과 바닥의 타일은 깔끔했고 깨끗하게 설거지 된 다양한 종류의 냄비와 조리도구가 걸려있었다. 으스스할 정도로 커다랗고 위협적인 칼이 잔뜩 걸려있기 있기도 했는데 이상하진 않았다. 그렇다고 절대 쫄지 않았다. 두리번 거리던 백호는 빛이 있는 방향으로 더 들어갔다. 커다란 냉동실의 문이 조금 열려서 빛과 냉기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백호가 그곳으로 다가갔다. 문 틈으로 보이는 건 사람이었다. 새파랗게 얼어붙고 교복을 입은… 심장이 덜컹 내려앉은 백호가 냉동실로 들어가려다, 머리털이 쭈뼛 솟을 만큼 섬뜩한 느낌에 몸을 피했다.

 

“부엌에 들어오지 말라고 했잖아.”

 

끝이 뾰족한 식칼이 그가 있던 위치에 타일을 뚫고 박혔다. 조금만 더 있었으면 머리통이 뚫렸을 것이다. 양 사장이 시퍼런 안색과 돌아버린 눈으로 부자연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나가.”

“호열아, 우리 얘기 좀 하자.”

“죽어.”

“으엥?”

 

그리고 뭔 말도 없이 중식도를 들고 달려드는 양 사장, 아니 호열을 피해 백호는 이리저리 도망 다녔다.

 

“누아악! 잠깐만!”

“나가!”

 

중식도가 아슬아슬하게 그의 팔을 스친다. 호열은 정말 진심으로 백호를 죽이려고 했다. 뭔 말을 걸어보려고 해도 ‘나가’ 나 ‘죽어’ 밖에 모르는 처키 인형같았다. 쟁반을 들어 막아보려던 백호는 호열의 칼질 한 번에 은쟁반이 찢어지자 일단 도망쳤다. 후눗 일단 피하자!

 

방향을 잘못 잡은 백호가 들어간 곳은 바깥이 아닌 창고였다. 밀폐된 공간에 스스로 기어들어가다니, 순간 아차했지만 창고는 생각보다 무척 넓었다. 가게 건물이 이렇게 크지 않았는데 창고가 어떻게 이렇게 넓은지 궁금해할 여유도 없었다. 백호는 일단 가득한 선반 사이에 숨었다.

 

“백호야, 어딨어?”

 

그렇게 지금. 선반에는 식재료 뿐만 아니라 듣도보도 못한 온갖 것들이 가득하다. 백호가 숨은 선반은 밀봉된 검은 항아리와 정체를 알 수 없는 말린 것들이 잔뜩 매달려 있었다. 건너건너에서 그를 찾는 호열의 목소리가 들린다. 아니, 저게 호열이 맞나? 그럼 냉동실 안에 있던 건 뭐지. 호열이는 왜 냉동보관 되고 있는 거지? 모든 게 비정상적이다. 제발 여태 먹어온 수십그릇의 짜장면에 들어있던 고기가 호열이는 아니었길 기도하며 백호는 그 중에서 가장 통나무 같은 것(이거 다리처럼 생겼는데. 에라 모르겠다.)을 꺼내 손에 쥐었다. 바짝 말랐는지 제법 딱딱했다.

 

“백호야. 백호야.”

 

백호야. 백호야. 백호야. 끊임없이 부르는 목소리. 양 사장인지 양호열인지 아무튼 정상은 아니다. 일단… 이걸로 기절시키고. 묶어놓은 뒤에 사정을 물어보는 거야. 음, 천재적인 작전. 강백호는 몽둥이를 들고 호열의 뒤로 접근했고 힘껏 휘둘렀다. 빡! 소리와 함께 양 사장은 실 끊어진 인형처럼 우당탕 넘어졌다. 후눗 너무 세게 휘둘렀나.

 

“호, 호열아. 호열아. 죽었냐?”

백호가 헐레벌떡 몽둥이를 내려놓고 호열을 일으켰다. 뒷통수를 만져보는데 몸이 시체처럼 차가웠다. 다행히 머리가 많이 찌그러지진(?) 않았다. 얼른 데리고 나가려는데 호열이 금방 눈을 다시 떴다. 이번에는 동태 눈깔이 아니라 그가 아는 양 사장, 아니 양호열의 얼굴이었다.

 

“……양호열, 너야?”

 

호열이 인상을 일그러뜨린다. 우는듯한 얼굴인데 눈물을 흘리진 않았다. 그러나 백호를 바라보는 눈동자는 10년 전과 똑같았다. 호열이 백호의 손을 잡는다. 손도 서늘했다. 입술을 달싹이던 호열이 무언가 말하려 하기에 집중하는 순간 시야가 뒤집힌다.

 

엄청난 격통에 백호는 한동안 숨을 쉬지 못했다. 선반을 몇 개나 쓰러뜨리며 몸 위에 말린 식재료와 향신료가 쏟아졌다. 저도 모르게 기침이 나온다. 저게 대체 뭐야? 90키로가 넘는 백호가 가볍게 날아갈 정도로 강한 힘을 가진 녀석. 부엌에서 나오지 않던, 하나 더 있다는 요리사를 드디어 나왔다.

 

“여태 저 녀석이 만든 걸 먹어왔단 말이지.”

 

요리사는 키가 3미터에 가까웠고 팔이 비정상적으로 길었다. 어둠속에서도 피부는 푸르딩딩했고 눈에서 불빛이 돌았으며 자세가 무척 구부정했다. 하도 비현실적이라 백호는 저 녀석이 우리 구단 센터면 이번 시즌 우승은 따놓은 당상이겠다는 생각이나 들었다. 요리사는 양 손에든 식칼을 어찌나 거대한지 호열이 들고 있던 중식도는 장난감처럼 보였다. 그 녀석이 묵직한 발걸음 소리를 내며 다가온다. 백호는 일단 몽둥이를 다시 주워들었다. 둔한 녀석 같은데, 그렇다고 이길 자신은 없지만 물러설 수도 없다. 칼 든 녀석이랑 싸우는 건 오랜만인데.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백호는 타이밍을 기다렸다. 몽둥이를 줍는 척 몰래 한손에 쥐고 있던 향신료 가루를 안면에 뿌릴 생각이었다. 저 녀석도 눈이 있으면 틈이 나오겠지. 백호가 막 팔을 휘두르던 찰나, 그의 옆에서 작은 인영이 쏜살같이 요리사에게 달려들었다. 양호열은 평생 칼을 잡아온 사람처럼 번개처럼 날아 괴물 요리사의 목을 땄다. 시커먼 피가 분수처럼 쏟아졌다. 쿵 소리를 내며 요리사가 무릎을 꿇는다.

 

“뛰어!”

 

호열이 백호의 손을 잡고 내달렸다. 백호는 엉겁결에 따라 뛰었다.

 

“양호열! 역시 너 맞지? 지금껏 어디서 뭐했던 거야, 어?!”

“나중에 말해! 저 녀석은 목을 따인 정도로 안 죽는다고.”

 

뭐 그런 게 다 있단 말인가 싶었는데 진짜로 그 요리사가 피를 철철 흘리며 다시 일어서고 있었다. 그것은 짐승같은 소리를 내며 두 사람을 따라왔다. 선반이 온통 무너지고 부숴져도 속도가 전혀 줄지 않았다. 젠장, 둔한 줄 알았는데 빠르기도 했잖아. 덤볐으면 뼈도 못 추렸을 것이다.

 

한참 뛰던 그들은 창고를 나와 냉동실 안으로 들어왔다. 호열이 문을 잠궜다. 숨을 고르던 백호는 마침내 보았다. 틈 사이로 보이던 익숙한 교복. 고등학생 시절 마지막으로 본 호열이 교복을 입고 19살의 모습 그대로 하얗게 얼어 잠들어 있었다.

 

“이게…”

 

바깥을 살피던 호열이 떨리는 눈으로 얼어붙은 시체를 쓰다듬는 백호를 보고 씁쓸한 표정을 짓는다.

 

“어떻게 된 거야.”

“사고가 있었어.”

“무슨 사고? 다쳤어? 지금 몸이 너무 차가운데. 죽은 거 같은데. 너는 지금 그럼…”

 

호열은 제 시체와 저를 번갈아보며 백호를 보며 짧게 이야기 했다. 졸업식을 가던 중에 사고가 났다. 그대로 죽는 줄 알았는데 눈을 떠보니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중국집이었고, 냉동실에 제 시체가 있었다. 나가고 싶었지만 그럴 때마다 여기로 돌아왔다고 한다. 사고가 났다는 구간부터 백호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럼 넌 정말 죽은 거야?”

 

쾅! 냉동실의 문이 거세게 흔들렸다. 동그랗게 난 창문 너머로 괴물 요리사가 보였다. 금방이라도 문이 부숴질 거 같았다.

 

“백호야, 잘 들어. 내가 시선을 끌게. 문이 부숴지면 바로 뛰어서 가게 밖으로 나가.”

“그럼 넌?”

“난 어차피 못 나가.”

“같이 가! 너 안 가면 나도 안 가.”

 

백호가 억세게 호열의 팔을 붙잡는다. 코를 훌쩍이며 못생기게 울먹이는 얼굴에 호열이 소리내어 웃음을 터뜨렸다. 고등학생 때와 똑같은 웃음이었다.

 

“어이, 천재. 무슨 소리야? 바깥에 사람들이 널 얼마나 기다릴 텐데. 다 그만두고 여기서 나랑 식당 할 거야?”

“…….”

“걱정 마. 나 모르냐? 여기서 10년 동안 칼질만 한 거 아냐. 벌써 나갈 방법을 찾았어. 시간이 걸릴 뿐이야.”

 

문의 경첩이 뜯겼다.

 

“졸업식 못 가서 미안.”

“호열아.”

“고백해준 거… 고마웠어. 많이 늦었지만 아직 답할 수 있을까?”

 

살인마가 문을 부수고 있는데 고백을 언급하다니. 이 상황에서도 귀가 붉어진 강백호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자 호열은 얄밉게도 찡긋 윙크했다.

 

“나가면 대답할게.”

 

두 사람이 손을 꾹 맞잡는다. 언젠가 교복을 입고 뛰어다녔던 것처럼, 든든하게 등을 맞대고 다녔던 것처럼, 서로만 있으면 그 무엇도 두렵지 않던 때처럼. 양호열은 그에게 거짓말 하지 않는다. 그는 분명 돌아올 것이다.

 

문이 부숴지는 순간, 호열이 손을 놓았고 백호는 있는 힘껏 달렸다.

 

 

무통보 5개월 잠수라는 답없는 사고를 친 강백호 선수는 다행히 무사히 구단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래도 시즌이 정말 시작하기 전에는 돌아왔고, 같은 소속 동향 출신인 송태섭 선수의 눈물의 커버 덕이다. 다만 경고와 함께 이번 시즌에서 제외되었다. 가뜩이나 수명이 짧은 운동선수에게는 시즌에서 제외된 것도 뼈 아픈 일이지만 그래도 실직자가 되는 건 면했다. 물론 실직자가 되었어도 그를 불러줄 구단은 많았을 테지만.

 

미스테리한 사건을 겪었어도 그는 여태 그래왔던 것처럼 다시 삶을 살아갔다. 운동을 하고, 경기를 뛰었다. 농구 코트에서 영광의 순간을 마음껏 즐겼다. 친구를 찾는다고 홍보하고 제보 받아 뛰어다니는 일도 전부 그만뒀더니 제 2의 전성기가 찾아왔다. 사람이 변했다는 소문도 돌았지만 백호는 신경쓰지 않았다.

 

다만 신장개업이라고 걸려있는 묘하게 수상한 중국집을 발견하면

 

“어서 오세요.”

 

그는 망설이지 않고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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