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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자 - 한로로.jpg

나의 이카루스

호지

@hoji_ww

한로로 - 용의자

하나미치가 돌아왔다.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요헤, 나… 이제 더는 못 뛴대.”

 

천재 바스켓맨 보고 농구를 그만두래. 하하, 말이 되냐? 위태로이 흔들리는 몸이 어깨에 닿는다. 은신처를 향하는 짐승처럼 한껏 구부려 웅크린 몸. 맞닿은 피부를 파고드는 짙은 열기. 남겨진 빛을 태우는 과정에서도 그는 여전히 치열했다. 너는 금방이라도 한 줌의 재가 되어버릴 것만 같다. 하나가 잘게 쪼개어져 영영 부서지는 상상. 그게 불가능한 일인 줄 알면서도. 요헤이의 마음에는 두려움이 일었다. 짧은 정적 사이 물기 어린 한숨이 흐른다.

하나미치, 울고 있어? 울음을 삼키는 이를 앞에 두고 요헤이는 물음을 삼켰다. 떨군 고개 위로 빛이 들지 않는다. 하나미치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그로서는 알 수 없었다.

대신 요헤이는 손을 뻗는다. 살이 내린 그의 볼을 매만지면 하나미치는 제 쪽으로 기대왔다. 습관처럼. 요헤이의 손길이 어느새 짓무른 눈가를 향한다. 물길이 흐른 자취를 따라 선을 그리기를 몇 번. 거친 피부가 움찔거린다. 언뜻 엄지 위로 뜨거운 것이 스민 것도 같다.

어둠에 익숙해진 시야에 하나미치의 눈이 들어선다. 두 눈은 그의 것이라 믿기 어려울 만큼 비어 있었다. 언제나 빛과 영광이 만면을 두르던 그였는데. 두 발에 날개를 단 듯 자유로이 코트를 날아다니던 너였는데. 생의 기운이 넘치던 날들은 검게 물들어 이내 바스라진다.

세상은 사쿠라기 하나미치에게서 농구를 앗아갔다.

슬픈 그는 돌아왔다. 오랜 친구 미토 요헤이에게.

 

“요헤, 난 말야… 평생 농구할 수 있을 줄 알았어.”

 

설움을 억누르는 목소리로 하나미치가 말한다. 너도 알잖냐. 바스켓맨은 서른까지 황금기라고. 그때까지 한참 남았는데, 왜… 잘하고 있었는데, 나, 더 뛸 수 있는데, 더 뛰어야 하는데… 여기서 그만두라니 그게 다 무슨 소리야. 요헤, 아니지? 이거 다 거짓말이지? 핏발 선 눈으로 응어리진 괴로움을 뱉는다.

요헤이는 침묵 아래 조각난 그의 마음을 읽는다. 고요한 시선이 마침내 답을 희구하는 시선에 닿은 순간. 하나미치는 발작하듯 몸을 떤다. 요헤이는 눈길을 거두었다. 붉은 혼란 위로 아득한 절망이 내린다.

 

요헤이.

왜 그런 눈으로 나를 보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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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헤, 나도 저렇게 날아보고 싶다.”

 

구름 위를 가로지르는 새를 바라보는 하나미치에게 이카루스 이야기를 들려준 적이 있다. 금속 깃털을 밀랍으로 이어붙인 날개를 달고 광활한 하늘을 유영하던 이카루스. 명심해. 우리는 인간이란다. 태양에 닿을 만큼 높이 날아서는 안 돼. 고개를 끄덕이며 웃던 그는 첫 비행의 기쁨에 도취되어 경고를 잊어버린다. 운명처럼. 오직 하늘을 나는 자유만을 느끼며, 두 팔을 뻗어 높은 곳을 향해 날아간다. 고귀한 천상의 것으로 여기던 태양에 가까워지는 자기 자신을 발견한다. 머나먼 태양이 달콤한 목소리로 저를 부르는 것만 같아서. 이대로 조금만 더 손을 뻗으면 빛 한 줄기에 닿을 것만 같아서. 지금이라면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어낼 수 있으리라고. 자신이라면 해낼 수 있으리라고. 거짓된 믿음에 빠진 이카루스. 찬란한 영광의 순간은 이내 차디찬 현실로 뒤바뀐다. 익을 듯한 열기가 밀랍을 녹여내고. 등을 지탱하던 날개가 검게 타오르고. 그렇게 인공 깃털이 하나둘 사라지고 나면. 인간은 망망대해의 품으로 돌아간다. 하나의 비행은 그렇게 멋없는 추락으로 끝이 난다.

그때 하나미치가 들려준 답을 기억한다. 그는 비극을 듣고서도 공포나 절망 따위에 휘둘리지 않았다. 새로운 태양을 발견한 사람처럼 두 눈을 빛냈다.

 

“우와, 그거 끝내주는데!”

“…끝내준다고?”

“응, 원하는 대로 후회 없이 날았단 소리잖냐.”

“…….”

“그러다 정말로 태양에 닿았을 수도 있고 말야.”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 요헤. 하나미치는 언제나 같은 웃음을 지었다. 맑음으로 무장한 얼굴 앞에서 어떤 반응을 내놓아야 할지. 요헤이는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마주한 웃음을 어설프게 따라 짓고는 다른 주제로 넘어갈 뿐.

후회 없이 날았니, 하나미치? 요헤이는 제자리를 되찾듯 그날의 대화를 돌이키곤 했다. 하나미치의 비행과 추락에는 일말의 회한도 남지 않았을까. 타인의 외연을 지켜볼 수 있다 한들 우리는 서로의 내밀한 진심 따위는 헤아릴 수 없는 종속이기에. 요헤이는 하나미치를 잘 아는 축에 속했으나 때로는 완전한 이해에 닿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애석해했다.

하나미치는 제 안의 선수로서의 죽음을 오래도록 슬퍼했다. 그럼에도 그는 변함없이 빛났다. 늘 그랬듯이. 현재를 지내며, 허황된 미래를 좇지 않고, 과거를 그릇된 방향으로 반추하지 않는다. 외로움과 괴로움이 발목을 붙잡아도 잠시 걸음을 멈출 뿐, 앞을 향해 꿋꿋이 나아간다.

요헤이는 제 안에 들어찬 검은 더미를 마주한다. 알 수 없다. 하나미치와의 대화를 복기한 뒤 웃음이 나오지 않던 게 언제부터였는지. 마지막으로 소리 내어 웃어본 기억은 어느 때였는지. 몸이 무거워지는 기분을 느낀다. 구덩이 같은 무언가가 발밑에 어른거린다. 빠지면 쉬이 헤어나지 못할 줄 알면서도. 걸음을 멈출 수 없다. 하나의 자국을 새기기 전 중심을 잃고 끝없는 아래로 추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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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미치는 농구를 사랑했다.

처음에는 별 볼일 없는 공놀이라고 생각했다. 정해진 선수들과 정해진 구역을 쏘다니고, 정해진 규칙대로 공을 보내고, 정해진 위치에 던져 넣어 점수를 얻는 따분한 종목. 그는 뛰어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성실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은 아니었다. 자신의 농구 실력이 일취월장하기를 바랄 뿐. 재미나 성취 따위를 느낄 겨를은 없었다.

어느 날 그에게 유니폼이라는 날개가 주어지며 모든 것이 바뀌었다. 붉은 농구복을 입고 있으면, 그는 어디서든 농구부 사람이 되었다. 감독이나 부원들을 만나면 정답게 인사를 나누고, 언제든 농구에 관한 조언을 구하고, 경기에 새로운 마음으로 임할 수 있었다. 유대와 소속의 감정은 농구를 향한 관심과 흥미로 번져갔다. 하나미치는 유니폼 뒷면에 등번호를 달고 드넓은 코트를 휘저었다. 떠도는 공을 제 힘으로 잡아낼 수 있다는 불확실한 믿음 하나만을 가지고 온몸을 내던졌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시야는 넓어졌다. 농구공이 아닌 농구라는 근원에 자꾸만 손을 뻗고 싶어졌다. 누구보다 멋진 농구인으로 거듭나기를 꿈꾸었고 갈망했다. 스스로 영광의 시대를 선언하고 주변 사람들을 이끌며. 어쩌면 농구라는 것을 영원히 사랑할 수 있으리라고. 감히 확신했다.

 

요헤이는 하나미치의 농구를 사랑했다.

처음부터 범상치 않은 녀석이었다. 하릴없는 하루들로 빼곡한 삶을 이루던 요헤이의 앞에 그는 예고 없이 나타났다. 운명처럼. 때마침 두 사람은 친구가 필요한 시기가 겹쳤고 성격 또한 잘 맞았다. 관계가 긴밀해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끝을 모르고 재잘거리는 그의 입이 성가실 때도 있었으나 그게 싫지만은 않았다. 걱정거리는 모조리 씹어 먹어버린 듯한 당당한 얼굴. 생의 기운이 만연한, 자신감이 가득한, 아름다운 웃음. 요헤이는 그 웃음을 좋아했다. 은연중에 지켜낼 것을 다짐했다. 그의 웃음이 향하는 곳을 응원했다. 농구는 그중 하나였다.

어느 날 하나미치의 눈빛이 달라졌다. 농구 경기에서 상대에게 시비를 걸지 않았고, 반칙을 쓰지 않았고, 원칙과 규칙을 제대로 배우고 싶어했다. 삼 초면 잠에 들던 녀석이 밤새도록 자기 슛폼을 분석했다. 경기마다 애처로울 정도로 전력을 다했다. 요헤이는 무너질 결말을 알면서도 뛰어가는 넓은 등을 보았다. 다친 몸을 일으켜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그를 보며 눈시울을 붉히는 사람들을 보았다. 군중 사이에서 홀로 허탈하게 서 있던 기억. 결국에는 너도 다르지 않다는 것. 주어진 한계를 넘어서려 한다는 것. 기어코 네 몸을 부서뜨릴 작정이라는 것. 모든 생각을 곱게 접어 한 문장으로 줄인다. 너무 멀리 날아오르진 마, 하나미치. 잠든 그의 얼굴에 덧없는 기도 하나를 붙여주었을 뿐.

그때부터 하나미치의 추락은 예정되어 있었다. 영광의 시대는 무참한 속도로 저물어갔다. 높은 곳으로 날아오를수록 더욱 깊은 아래로 떨어지는 법이다. 요헤이는 하나미치에게 수많은 예외를 쥐여주었지만 그것만큼은 하나미치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 불길을 끌어안은 하나미치. 가여운 나의 이카루스. 아직도 농구가 좋으냐고 물으면 너는 당연하다고 웃었다. 그게 보답받지 못할 사랑인 줄 알면서도. 추락하고, 다시 날아오르고, 다시 추락하고, 또다시 날아오르고. 하나미치는 끝없는 부상과 재활을 이어갔다. 요헤이는 묵묵히 곁을 지켰다. 언젠가 그의 심지를 밝히는 불씨가 사명을 다하는 날이 올 것을 알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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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눈으로 날 쳐다보지 마.”

“내가 어떤 눈으로 널 보고 있는데?”

“한심하고, 불쌍하고, 더럽고….”

“…하나미치, 그건 내가 아니라 너야.”

“…….”

“내가 아니라 네가 보는 네 모습이라고.”

 

하나미치의 낯은 일그러지지 않았다. 차분하게. 너무도 침착하게. 부서지기 직전의 석고처럼 단단히 굳어갔다. 그가 요헤이에게 바라던 반응은 이게 아니었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로부터 경험한 동정이나 경멸이 돌아오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오랜 친구는 자기 자신을 직면시키는 거울을 손에 쥐여주었다. 선물한 거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상대로부터 도로 뺏어올 수는 없는 법. 그렇다면 냉정으로 무장한 얼굴 앞에서 어떤 반응을 내놓아야 할지. 요헤이는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제게 요구된 반응을 어설프게 따라하고는 다른 주제로 넘어가길 바랄 뿐.

농구가 뭐라고. 그깟 공놀이가 뭐라고 전부를 걸어? 다문 입술 사이를 기어코 넘어온 진심. 요헤이의 것인지 하나미치의 것인지. 누가 누구의 마음을 읽어낸 것인지. 그들로서는 알 수 없었다. 짧은 정적 사이 메마른 한숨이 흘렀다.

네가 어떻게 그런 말을 해. 하나미치는 충격과 혼란, 분노와 슬픔이 뒤섞인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어쩌면 요헤이의 얼굴이 거울에 비친 것도 같다. 고요한 시선이 마침내 답을 구한 시선에 닿은 순간. 하나미치가 주먹으로 탁자를 내리친다. 무언가 산산이 부서지는 소리가 난다. 조각조각 깨어진 탁자의 유리면 위로 그의 피가 배어든다. 요헤이는 붉은 절망에서 시선을 거두지 못한다. 하나의 손에 박힌 유리조각들은 어떤 모양이었을까. 그날. 부서진 건 탁자뿐이었을까. 하나미치, 너의 마음은 이미.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마.”

 

차갑게 식은 목소리. 너에게선 들어본 적 없는 종류의 말이었다. 그는 마음이 약해지기 전 서둘러 이곳을 떠나야 한다. 이 자리를 벗어나야 한다. 우리 사이에 놓인 문을 굳게 잠그고 너는.

 

문장을 다시 쓴다.

요헤이는 하나미치의 농구를 사랑한 적 없다.

사쿠라기 하나미치는 미토 요헤이에게 돌아온 적 없다.

부서진 탁자 위에는 낡은 신문 한 부가 놓여 있다. 어느 농구선수의 은퇴 소식을 전하는 기사가 걸려 있다. 박제된 천재의 죽음도 덧이 없는가. 검은 잉크로 흐릿하게 인쇄된 얼굴을 그리는 손이 잘게 떨린다. 메마른 웃음. 공허한 눈빛. 밀랍이 녹아내린 낙화. 네가 내게 전해준 것들. 되돌릴 수 없는 것들. 잔상처럼 남아 한시도 지울 수 없는 것들. 언뜻 엄지 위로 뜨거운 것이 스민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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